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남북 협력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곧 가시화하고 미국 일본의 독자적 제재가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3월에 있을 한미연합훈련은 사상 최대의 무력 시위가 될 것이라 한다. 게다가 동북아시아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연일 가혹한 대북 응징을 천명하고 일부 보수언론은 독자적 핵무장론, 군사적 선제타격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런 한반도의 정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불안하고 착잡하다. 당장 북한의 추가 도발이 걱정인 데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안보와 경제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지금까지 대북 정책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사실상 예고된 도발이나 마찬가지다. 2013년 2월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북한은 3차 지하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히면서 '원자탄을 경량화 소량화하는 한편, 위력은 배가시켰다'고 자평했다. 전문가들은 핵개발국가들의 전례를 들어 북한의 4, 5차 핵실험을 예상했다. 이번 도발은 3년 전 예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북한은 이미 계획된 핵 프로그램을 한 치 흔들림 없이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 정부의 행보는 어지럽다. 핵실험 후 가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 제안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또 전략적 협력을 위해 공을 들여온 중국은 대북 제재 동참에 매우 소극적이다. 북한은 패를 훤히 내려다 보고 있는데 우리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기치로 내걸었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통일 대박론 등을 잇따라 제창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다. 이런 장밋빛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화는 소홀히 하면서 화려한 수사에만 열중했다는 느낌이다. 북한의 신뢰와 진정성만 요구하고 대화를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선핵포기 후협력'이라는 기조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반도 문제가 꼬여있는데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통일이 구호로 이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이런 딜레마의 연장 선상에 있다.
우리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며 화려한 수사에 갇혀 있을 동안 북한은 4차 핵실험을 충실하게 준비한 것이다. 우리의 허송세월이 북한에게는 핵개발의 시간만 준 꼴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가야 대미, 대남, 대일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판단이 확고하다. 단기적으로 중국과 관계가 불편해지고 대남 대미 관계에서 경제적 손실은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방한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대북 제재로 군사적 행동을 한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다. 모든 시설이 영변에 모여 있던 1994년에는 정밀타격이 가능했지만 여러 곳으로 분산된 지금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햇볕정책 이후 지속된 북한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고 핵문제에 있어서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대북압박을 통한 북핵 저지는 지난 10년 동안 사실상 실패한 전략이다. 6자 회담이 중단된 지난 8년 동안 북한의 핵능력만 더욱 고도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신냉전 기류는 최대한 빨리 해소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가능하다. 군사적 타개나 경제적 제재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면 프레임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외교관 조지 캐넌의 말은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외교는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는 기계공학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따라 작물을 가꾸어내는 원예가의 처지에서 봐야 한다."
박상현 논설위원 gara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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