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일반 백성에게 요즘과 같은 공휴일 개념은 당연히 없었다. 대부분 절기에 맞춰 농번기에는 열심히 농사 짓고 농한기와 명절에 한가하게 지내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관청은 매월 1, 8, 15, 23일이 정기휴일이었으며 24절기에도 일을 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왕실 제삿날과 집안의 제삿날에도 공무를 보지 않은 것으로 기록했다. 요즘의 공휴일 개념이 생긴 것은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1895년 을미개혁 이후다.

설날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 명칭을 되찾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일제는 을미개혁 당시 태양력과 함께 도입된 양력 설만 공식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내내 신정과 구정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일제는 조선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설날 풍속을 매우 심하게 탄압했다. 입고 다니는 설빔에 먹물을 뿌리는가 하면 떡방앗간까지 가동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고유 풍속을 끝내 없애지 못했다.

광복 후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음력 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중과세가 낭비라며 설날은 휴일로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설날을 공휴일 지정한 것이 1985년이다. 무려 90년 동안 명절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한 셈이다. 그후 1989년 노태우 정부에 들어와서야 설날이란 명칭을 되찾고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올해 설 연휴는 토,일요일을 포함해 5일간이다. 이틀간 휴가를 신청하면 9일간으로 연장할 수도 있으니 긴 연휴다. 2014년 도입된 대체공휴일 제도 덕분이다. 설 연휴를 보내는 모양도 다양해졌다. 명절을 맞아 해외여행객들로 국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신풍속도도 아니다. 일찌감치 차례를 지내고 국내 여행에 나서는 사람도 많다.

명절을 맞아 가족 친척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학업 취업 결혼 등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듣는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이야기. 이들을 '명절 버그아웃족(Bug-Out族)'이라 부른다. 버그아웃은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탈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이런 버그아웃족을 위한 '명절 대피소'라는 공간까지 생겼다고 한다. 진로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많다는 뜻이니 서글픈 풍속도다.

그래도 설날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며 덕담을 나눠야 제맛이다. 어려움을 이기는 데 가족과 친척만한 우군이 있겠는가. 가족의 따뜻한 덕담 한마디로 모든 불운을 날려버리고 상서로운 기운으로 충만한 설날이 됐으면 한다.

박상현 논설위원 gar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