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못 미치는 것이 4가지 있다고 했다. 부녀의 수절, 천인의 장례와 제사, 맹인의 점치는 재주, 무사의 활 쏘는 솜씨 등이 그것이다. 또 중국의 창, 일본의 칼과 견줄 만한 우수한 무기로 활을 꼽았다. 그 당시 선비들 사이에 유명했던 백과사전이 조선의 활 쏘는 솜씨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음을 소개한 것이다.
중국이 우리 민족을 지칭할 때 부르던 '동이(東夷)'가 동쪽의 활 잘 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 신출귀몰한 활 솜씨는 고구려 벽화에 잘 남아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며 뒤로 돌아 사냥감을 겨누고 있는 수렵도의 모습이다.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것도 어려운 데 뒤돌아 쏜다는 것은 여간 고도의 기술이 아니다.
유가에서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를 넘어 심신을 단련하는 행위로 중시했다. 공자는 '논어' 팔일편에서 '군자는 이기고 지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활쏘기는 할 만하다. 서로 읍하며 사양하여 올라가고 내려와서는 술을 마셔야 하지만 활쏘기에서의 다툼은 군자답다'고 했다. '활 쏘는 것은 자신을 바로잡은 후에 발하는 것'이라고 한 맹자의 말도 궤를 같이한다. 이 때문에 성군을 지향하는 조선조의 군주들도 활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국가 차원의 중요 잔치에서도 활쏘기는 빠지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 중 하나가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을 쏘았다'이다. 휴전 기간 일기에는 어김없이 이 대목이 나온다. 1592년 2월 5일 자 일기를 보자.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18순을 쏘았다'. 1순은 5대이니 이날 쏜 화살은 모두 90대. 대개 하루 50~100대의 화살을 쏘았는데 적은 양이 아니다. 이 뿐만 아니라 휘하 장군들과 활쏘기 시합을 하는 장면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그가 심신단련을 위해 활쏘기에 얼마나 힘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해군사관학교에 활로 무장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왼손에 칼 대신 활을 잡고 등에는 화살통을 멘 모습이다. 활을 든 충무공 동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칼을 들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무인의 상징성을 부각했다면 활을 든 모습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는 해사 측의 설명이다. 어쩌면 무장의 결기가 떨어져 보일지 모르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조금이라도 충무공의 참모습에 다가가려는 해군의 노력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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