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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부모가 최고 스펙인 나라 /송문석

아버지 직업 묻는 기업, 본인 실력은 뒷전이고 부모 능력이 취업 당락

현대판 음서제나 같아…젊은이에게 희망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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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진영이 지난 봄 '어머님이 누구니'라고 노래했을 때 우리는 그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운동나온 여성을 처음엔 흘깃 쳐다보다가 전방위적으로 앞뒤 좌우 위아래로 훑어보며 박진영은 이렇게 묻는다.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누구는 노래 가사처럼 뮤직비디오 속 여성의 몸매에 탄성을 지르고, 어떤 이는 얼굴이나 마음이 예쁜 것보다 '엉덩이에 살이 모자라면 눈이 안 간다'는 등의 외설적인 가사에 분개했을 수도 있겠다.

박진영이 노래 가사를 통해 욕망과 외모 지상주의를 찬양하건 말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적 취향-박진영이 그렇다는건 절대 아니다. 그는 추문이 없는 바른생활 남자라고 한다-이고, 눈앞에 멋진 여성이 있다면 누구네 딸인지 궁금한 것은 장삼이사라고 다를 리 없다. 그렇다고 박진영처럼 "어머님이 누구니"라고 들이대놓고 본인에게 묻지 않는 게 예의이고, 모두들 그렇게 처신한다.

그런데 요즘 취업현장에서는 '아버님이 누구니'라고 대놓고 묻는다. 어떤 기업은 부모의 최종 졸업학교와 직장 내 직위까지 묻고, 살고 있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도 궁금해한다. 도대체 이런 건 왜 묻느냐는 반문이 취업준비생의 입안에서 맴돌고 이력서에 쓰고 싶지도, 면접에서 대답하기도 싫지만 그렇게 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어깨를 늘어뜨리며 대답하고 만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이 나의 학력이나 실력, 능력과 어떤 인과관계,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항변은 거대한 취업절벽 앞에서 한없이 오그라들수밖에 없다.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물음이 호기심 차원의 질문이라면 '아버님이 누구니'라는 질문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과는 의미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 쯤은 취업원서 몇 장 넣어본 이땅의 청춘들은 내남없이 안다. 지원자의 부모가 어느 정도 힘센 위치에 있고 영향력을 가진 인물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별볼일 없는 집안 출신이라면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걸러내겠다는 겁나는 사인 아니겠는가. 든든한 동아줄을 가진 특권층 자제라면 이런 질문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겠지만 속된 말로 빽도 돈도 없는 서민의 아들 딸들에게는 출신성분을 낱낱이 따져 이마빡에 합격, 불합격 딱지를 붙여나가겠다는 최후통첩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질문으로 들리는 건 당연하다.

이 같은 출신성분 따지기는 선진국에서라면 고소감이다. 미국에서는 인종이나 외모 차별이라며 이력서에 부모 직업 명시는 물론 본인 사진도 부착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도 국가인권위가 2003년 발표한 '입사지원서 차별항목 개선안'에서 지원자 신체사항, 가족의 성명 연령 학력 직위 월수입 등 총 36개 항목을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이다 보니 기업들은 여전히 '아버님이 누구니'라고 저승사자처럼 묻고 또 묻는다.

"왜?" 왜 기업들은 이토록 입사지원자 부모의 학력과 직업, 출신지역, 심지어 돈이 얼마나 많고 적은지를 캐고 따지고 알고 싶어할까. 여기에는 '기왕이면 다홍치마'이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계산이 작용한다. 기업으로서는 미래에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자는 속셈이고, 한편으로는 고관대작의 자제를 볼모로 잡아놓고 유사시 이용해먹자는 얄팍한 노림수도 깔려있다. 거꾸로 고관대작이나 국회의원이 취업청탁을 해 오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죽어나는 건 조조군사라 했던가. 돈으로, 권력으로, 연줄로 들이대는 취업전선에서 이도 저도 없는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힘 없는 부모 탓을 해야 하나.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취업준비생 900명을 대상으로 '부모님의 지위, 재산 등 여건이 본인 실력보다 취업성공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물었더니 10명 중 6명 이상(64.6%)이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했다. 취업에 영향을 주는 부모님 능력으로는 직업 등 사회적 지위(42.1%), 인맥(25.4%), 경제능력(23.5%), 가정환경(5.2%), 정보력(2.2%)을 꼽았다.

현역 국회의원의 자녀 취업청탁과 로스쿨을 둘러싼 법조계 고위인사 자제의 특혜성 취업 등 각 분야 특권층의 대물림 소문은 오늘도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동수저 흙수저 똥수저로 비하하고,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처럼 '헬조선(지옥같은 대한민국이라는 뜻의 사이버상의 자조적 표현)'을 저주하고 탈출을 꿈꾼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 적도,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자식의 입장에서 본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부모 때문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은 억울하고 황당하다. 이게 국가의 묵인 속에 우리 사회와 기업이 벌이는 것이라면 연좌제이고 현대판 음서제이고 골품제다. 이래놓고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노력하면 이룰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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