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신문을 접하다 보면 선거 공약마다 주장하던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는 소식이나 서민 가계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소식은 없고, 전통시장 경기가 계속 바닥이라거나 가계부채 규모가 역대 최고라는 우울한 소식만 접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에서 중산층 가정이 사업 실패에 따른 과도한 빚으로 몰락하자 가족 전체가 생을 마감하였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방송이나 도시철도 역에 보이는 달콤한 대출광고는 누구나 언제든지 빚을 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전화 한 통으로 손쉽게 빚을 낸다. 바야흐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저축의 시대'가 가고 '빚의 시대'가 온 느낌이다.

사실 누구나 돈을 모아 잘살고 싶지 빚을 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이 빚이라는 녀석은 조금만 마음을 주면 화초처럼 물을 안 줘도 스스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부산에서 2년 넘게 개인회생 및 파산 사건을 담당하면서 접하게 된 신청인들의 사연은 대부분 우연한 기회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빚을 냈으나 갚지 못하고 돌려막기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신청인은 해결할 수 없는 빚 때문에 가족 유대관계가 깨져 가정이 해체되거나 스트레스에 따른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결국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다시 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듣다 보면 나 스스로 법관으로서 채무자에게 도덕적 해이가 있었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해야겠다는 마음 한편에 인간으로서 그동안 빚으로 인해 고통받았을 채무자의 상황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이와 함께 조금이라도 미리 빚 해결의 필요성을 자각했다면 지금과 같은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공존함을 느낀다.

우리는 이 빚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요즈음 우리는 누구나 빚을 전혀 안 지고 살 수는 없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신용카드도 따지고 보면 빚이고, 직장인들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마이너스 통장도 결국 빚이다. 그래서 빚은 암환자가 암을 치료하고 요양하며 여생을 살아가듯 관리하고 해결해나가면서 친하게 지내야 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빚 돌려막기를 하며 내 신용을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법정에서 심문을 하다 보면 자기 빚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지금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고 빚이 쳐다보기도 싫은 아픈 기억의 상처인 양 무작정 방치하고 지내온 사람이 많은데, 너무 안타깝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빚은 싫지만 그래도 잘 알아 친하게 지내고 자주 조금씩의 먹이라도 줘야 한다. 그래야 나를 해치지 않는 녀석이다.

물론 지금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거나 잘되는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빚 관리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앞서 중산층의 몰락사건을 언급했듯이 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에 항상 내 재정 상태를 살피고 만약을 준비하는 마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돌파구를 찾아보라는 말을 감히 하고 싶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인해 중산층 이하 대부분 가정은 빚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도 이러한 사태를 파악하고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여러 구제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리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우리 주변에 빚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많다. 그러니 혼자 해결하지 못한 빚 때문에 자포자기하지 말고, 또 악성 대출 브로커나 사채업자에게 고리의 이자를 뜯기며 신음하지 말고 법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 등 공인된 채무조정기관을 찾아 빚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세간의 오해가 많은 채무조정제도는 단순히 채무를 감면해줘 채권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는 법원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채무자에게 변제 가능한 규모의 채무 상환을 도와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채권자에게도 회수 가능한 규모의 채권을 조기에 확보하게 하고 신용을 회복한 채무자가 다시 국민경제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마련되었다. 따라서 채무조정제도는 단순한 채무자 개인의 신청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잘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빚의 시대를 사는 오늘, 각자 형편의 차이는 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자신의 빚을 관리하는 사회,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채무조정의 기회를 주고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사회, 각자의 신용을 바탕으로 빚을 내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그러면 우울한 '빚의 시대'가 아니라 환한 '빛의 시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부산지법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