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1737~1805)은 중국 사행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요술을 구경한다. 수십 가지 환술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난 뒤,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기록했다. '열하일기'의 '환희기'가 그것인데, 그 묘사가 정밀하고 생동감 넘치기로 유명하다. 하나를 예로 든다.

"요술쟁이가 수놓은 모직보자기를 탁자 위에 펼치고 보자기의 한쪽 모서리를 살짝 들어서 주먹만 한 자주색 돌을 끄집어낸다. 뾰족한 칼로 돌을 약간 찌르고는 돌 밑에 잔을 받쳐 놓으니, 소주가 쫄쫄 흘러나오다가 잔이 꽉 차자 멎었다. 구경꾼들이 다투어 돈을 내고 술을 사서 마신다."

이와 함께 바늘 수백 개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가 실 한 올에 줄줄 꿰어 빼내는 장면, 큰 칼을 배꼽 언저리까지 집어삼켰다가 빼내는 장면, 입속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타는 숯을 끄집어내는 장면 등 흥미진진한 요술이 이어진다. 이를 보는 연암이 넋을 잃었을 법하다. 그런데 그가 요술을 본 후 함께 관람한 청나라 관리 조광련과 나눈 대화가 주목된다. 먼저 연암이 속이는 자보다 속는 자가 더 문제라고 넌지시 말을 꺼내니, 조광련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광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자못 의미심장하다.

"요술의 술법이라는 것이 비록 천변만화의 기술이지만 겁낼 만한 것은 없습니다. 천하에서 정말 두려워할 요술은 크게 간사한 사람이 충신으로 비치는 것이며, 아주 점잖은 척하지만 알고 보면 천하에 가장 고약한 사람인 향원(鄕愿)이 덕을 꾸미는 일일 것입니다."

조광련은 환술이 백성의 눈을 현혹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요술과 같은 정치라 했다. 정치가 요술을 무색게 할 정도로 백성을 현혹하고 왕조를 무너뜨리니 그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연암은 "한나라 대의 호광(胡廣) 같은 정승은 여섯 임금을 섬기며 중용을 가지고 요술을 부렸으며, 5대 시대에 풍도(馮道)는 성씨가 다른 임금 여러 명을 섬기며 명철보신을 가지고 요술을 하였으니,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음은 오늘 본 요술 중에서 입안에 칼을 삼키는 요술보다 더 혹독한 것이겠지요" 하자 서로 크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지금 정치가들의 현란한 요술에 눈이 어지럽다. 연암이 본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짜임새 있게 펼쳐져,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지도 모른다. 모골이 송연한 장면만 추려보자.

때는 을미년 봄날, 성완종이 남긴 리스트로 정권 핵심인사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총리까지 낙마하며 정권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때마침 서툰 행정으로 메르스란 역병이 창궐하여 나라를 공포로 떨게 하고, 무고한 백성이 횡사했다. 유족은 망자의 임종도 못 하고, 망자는 염습도 할 수 없어 비닐로 둘둘 말린 채 화장되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로써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 눈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메르스는 신통하게도 미국에서 산 채로 배달된 탄저균의 위험성과 치명성 또한 감추게 했다. 나아가 새 총리 후보는 청문회에서 전 총리보다 더한 문제가 드러났으면서도 결국 인준됐다. 신기한 요술이지 아니한가.

메르스가 소임을 다하자,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이로써 역병의 공포가 일거에 배신과 충성의 권력 다툼으로 전환됐다. 가히 멋진 술법이다. 흥미진진한 결투가 벌어지는 사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정부에서 만든 세월호 시행령은 국회에서 만든 세월호 특별법과 상충한다. 특별조사위원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여 핵심 증거에 접근할 수 없게 한다. 더구나 조사를 받아야 할 공무원을 특위에 파견키로 한 것에서 진상을 성실하게 밝히지 않겠다는 정부의 속셈이 읽힌다. 분명히 알아둘 점은 이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국회법을 대통령이 뿌리친 것이다.

굵직한 장면이 또 하나 등장하는 데 최악의 한일 관계는 양국 지도자 사이에 오간 말 한마디로 풀리고 정상회담의 기운까지 무르익고 있다. 참으로 눈을 뗄 수 없이 다채롭다. 그러나 이 신통한 요술은 아베 정권이 밀어붙이는 안보법제에 담긴 침략적 성격을 숨겨 버렸다.

다시 요술은 이어져 정부는 12조 원의 추경예산을 포함한 22조 규모로 재정을 보강하여, 경기를 부양한다고 한다. 정말로 경제가 회복되면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 돈은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요술쟁이의 손끝에서 사라지는 동전처럼 없어질 것이다. 아, 기막힌 타이밍에 성완종 리스트 8명 중 2명은 불구속, 나머지는 무혐의 판결이 났다. 요술은 계속 이어진다. 두려운 것은 그 결말이다.

부경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