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인 분이 교사임을 단박 알아보는 나이, 훈장 티가 줄줄 흐르는 교단교사 시절, 기중 무서운 학부모가 있었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연계, 인성과 적성의 조화, 학업성적만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무모함과 위험부담 운운, 열변에 웅변까지 보태 상담 잘하고 나서, 생긋 주를 다는 어머니다. "나도 선생 해봤어요. 3년이나요." 자식교육을 주도하던 엄친은 사라지고, 오늘날 자모 전담이 대세다. 학부모는 없고 학모뿐이다. 식민지 광복 1국가2정부 전란 분단의 고착 거쳐 오리무중 통일, 도처에 깔린 간난, 살기 팍팍해서 그럴 것이다. 부양가족 뒷바라지만으로도 숨 가쁠 것이다.
'선생 3년' 밀월기다. 대학생 티가 여전 여상한 풋풋한 젊음, 학생뿐 아냐 선배교사에게도 무사통과다. 매사 미쁘고 사랑스럽다. 인성지도 생활지도 교과지도의 순서가 헷갈려도, 업무가 미숙해도 양해사항이다. 교실에 들어가 보자. 중학생과는 예닐곱 살, 고교생에게는 너덧 살 손위다. 사제동행으로 열정이 차고 넘친다. 간간이 들려주는 대학시절의 사기와 유사는 탁월한 즐거움이다. 조만간 현실이 될 테니까. 구닥다리의 잔소리인지 진도 나가긴지 아리송한 수업이 징글징글하기만 하던 아이들에게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선생을 흠모하는 조숙해 보이지만 미숙하고 여린 청춘, 순결한 영혼도 있다.
필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친구와 어울리듯 수업 반 환담 반이던 초짜 고교교사 시절, 몽환의 나날이었다. 재학생 전원이 예비 파독간호사인 간호학교 시간강사, 영민하면서 호젓한 학생들, 우리 고전과 명작 열독, 분에 넘치는 호의는 한스 카로사의 성장소설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는 아니었다.
교사는 제 자식 나이만큼 진지해진다는 금언대로, 제자를 자식에 대입시켜 걱정하면서 지도하는 스승은 전문가다. 더불어 즐겁기만 한 선생은 호사가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가 초미의 관심사인 현실이고 세태다. 호사가와 전문가로 번역해 봐도 진의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정곡 한두 곡 기차게 부르는 분은 아마고, 주어진 곡 막힘 없이 부르는 이는 프로라는 양분법도 있다.
말뜻에 얽매이지 않으면 쉽다. 몸가짐 마음가짐 차이로 분류하면 더 쉽다. 아마는 자신만을 위해서, 프로는 타인을 위하여 일한다. 예외 없다. 자리와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가가 아마라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이는 프로다. 저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작심한 경제인은 아마다. 공익과 국부를 지상목표로 삼는 이는 프로다. 자신이 살 집을 짓는 건축가는 아마, 타인의 집을 짓는 이는 프로다.
아마기사는 호사를 위한 바둑을 둔다. 훈수꾼을 싫어한다. 툭하면 싸운다. 즐기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기사는 관전자를 위한 바둑을 둔다. 관전평은 필수다. 예술도 어김없다. 자기만족을 위해 전시하고 연주 공연하는 분은 아마다. 관객과 청중을 위하는 이는 프로다. 감상할 수준이 아닌 전시회 연주회 공연을 아마추어 수준이라 폄하하는 이유다.
문학의 경우는 훨씬 절박하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인간정신을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인 말과 글로 형상화, 영육을 정화하고 승화시키기 위한 작업이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 장인정신, 전문가의 자세다. 오지게 읽어야 할 것이다. 동서고전과 명작을 섭렵하여 읽는 이의 감성과 정서, 이성과 지성이 요구하는 바를 연구하고 예측해야 할 것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집중하되 문면수심(文面獸心)의 폭력미화, 외설, 표절은 금기 중의 금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기만족과 영달을 겨냥한 말글을 쓰는 분, 호사가다. 소수든 다수든 독자를 위하여 쓰는 작가만이 전문가다. 구체적일수록 좋다. 부모를, 처자식을, 친구를, 오래 된 연인을, 마침내 불특정 다수를 위하여, 모름지기 '청정 독자를 위하여'다.
프로, 직업선수를 뜻하기도 한다. 오늘날 청탁원고 쓰기와 작품집 출판이 호구지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 작가도 독자도 안다. 시인작가가 전문가가 아니라도 그만이라 오해하는 현실적 이유다. 참담하다. 그래서 훨씬 절박하다, 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모든 생업이 어김없이 돈을 벌어다주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업체, 그럴싸한 직장을 가졌다고 금방 부자되는 것 아니지 않는가? 부모재산까지 까먹는 사례도 다반사다. 그렇다고 생업도 직업도 아니랄 수 없지 않는가?
정경사문 예술 문학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이끄는 사회와 나라가 올바른 사회, 희망 많은 나라다. 호사가는 호사가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자중자애가 절실한 시점이다. 허두로 돌아가 교육현장을 지키는 교단교사님께 드리는 고언이다. "여러분이 진정 전문가이자 사부입니다. 권력 금력 명성 중 하나라도 표 나지 않으면 전문가로 치부하지 않는 고약한 풍토에서, 애써 아이들 돌보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실천적 경험론적 교육전문가입니다. 자부심 가져주시기 곡진하게 바랍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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