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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신경숙의 사과, 대통령의 사과 /김찬석

메르스 사태 확산 관련 삼성 이재용 대국민사과…대통령·정부 무능 부각

절대권력의 진정한 사과, 국민적 신뢰 더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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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언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친 사과는 효과가 반감된다. 병역 기피로 법무부에 의해 입국이 금지된 연예인 스티브유(유승준)는 최근 인터넷TV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13년 만의 뒤늦은 사과는 일종의 '쇼'라는 지적이 압도적이었다.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과 또한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과의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여론이나 주위에 떼밀려 마지못해 하기 때문에 사과도 변명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가 되기에 십상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신경숙의 사과가 그렇다. 본인은 사과문에서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은 내 기억조차 믿지 못한다"고 했다. 청문회 석상에 불려 나온 증인들이 불리한 질문에 약속이나 한 듯 내놓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레퍼토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권력 신경숙의 입에서 나온 해명치고는 참으로 궁색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로부터 사과 압박을 받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4%가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중 56.5%는 '가급적 빨리 사과해야 한다'고 답해 '메르스 사태 해결 후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17.9%)의 3배가 넘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사과를 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사과를 하더라도 유승준식, 신경숙식 사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훨씬 넘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사과보다 메르스 퇴치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보여준 대 국회, 대 여야당 인식을 보면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은 '무오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는 대통령에게 더 무거운 부담을 안긴다. 국민은 삼성서울병원이 아니라 정부가 뚫린 것이라는 삼성서울병원 내과과장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믿는 판이다. 차라리 이 부회장이 사과를 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에 비판적인 국민의 정서를 감안할 때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적 비난을 대통령과 삼성이 나누어 짊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회장이 덜컥 대국민 사과를 해버렸다. 그것도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있다. 메르스 환자와 가족분들이 겪은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며 병상의 이건희 회장까지 끌어와 메르스 환자 가족과의 동병상련을 강조했다.

게다가 단순한 사과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음압병실 확보 등 의료환경을 개선하고, 감염 질환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에서 듣고 싶어 했던 말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의 이미지가 실추됐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부회장과 삼성의 위기관리 능력을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됐다. 대조적으로 정부의 무능은 더 부각됐다. 이것이 사과의 힘이다.

2008년 5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종양외과과장 다스 굽타는 실수로 환자의 9번째가 아닌 8번째 갈비뼈에서 조직을 떼어내고 말았다. 40년 경력의 베테랑인 그는 즉각 환자와 환자의 남편에게 "저는 환자분께 큰 해를 끼쳤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런데 굽타는 그렇게 했다. "굽타 박사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말해주었을 때 놀랍게도 분노가 한순간 사라졌다"고 환자 가족은 말했다.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의 배상금 외에 병원 이미지 실추까지 몰고 왔을 중대한 의료사고가 단돈 8000만 원의 배상으로 끝난 것은 물론 병원의 신뢰도는 더 높아졌다. 이후 일리노이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인정하고 사과한 경우가 37건 있었는데 소송까지 간 경우는 단 1건에 그쳤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잇따른 인사 실패와 세월호 참사, 청와대 비선 실세 논란, 성완종 리스트와 이완구 총리의 사퇴, 그리고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으로서 사과해야 할 일이 꼬리를 물었지만 사과다운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신경숙이나 박 대통령이 사과를 주저하는 것은 사과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거나, 권위의 손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아론 라자르는 그의 저서 '사과 솔루션'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문학권력, 절대권력의 위대한 힘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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