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사람만 모이면 경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 경제 현실이 녹록지 않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부산경제로 옮아 가게 된다. 전직 관료와 지역기업인, 대학교수 등 경제전문가들은 부산의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상황도 어렵지만 미래는 더 비관적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세계경제와 주변국가, 선진 도시의 움직임과 동떨어진 지역의 현실을 비관의 근거로 들었다.

지금 세계 경제의 3대 키워드는 중국, 창업, 혁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산경제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는 '중국이 없는 부산'이다. 중국은 이제 생산대국을 지나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소비대국으로 우뚝 섰다. 무역과 수출규모, 외환보유액 역시 세계 1위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를 저술한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의 잠재적 적수가 될 수 있는 세력은 유럽연합(EU)도 인도도 아닌 유일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조정래 소설가는 '정글만리'에서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라고 진단했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서울의 명동은 물론 동대문 홍대 입구는 중국 관광객(유커)으로 인산인해다. 이들 유커는 명품 쇼핑을 즐긴다. 월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매출액의 30% 가까이를 유커가 차지할 정도다. 제주도는 몰려드는 유커로 즐겨운 비명을 지른다. 제주가 지난해 전국 지가 상승률 1위를 기록한 것은 중국 자본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중국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 1990년대 앞다퉈 중국에 진출했던 부산기업은 지금 철수하기 바쁘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의 유커 매출 비중은 1%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렇다면 부산은 슈퍼파워 중국을 활용하지 않고 경제의 활로를 열어갈 수 있을까?

중국통인 김기재 전 부산시장은 "서울과 제주가 중국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부산은 한 발 비켜서 있다. 준비하지 않은 부산은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전 시장은 "늦었지만 부산시의 정책, 기업인과 오피니언 리더의 관심 순위 맨 앞자리에 중국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금 부산은 중국으로 달려가야 한다.

창업 불모지인 부산에서 지역경제의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지금 세계는 창업열풍이 불고 있다. 창업으로 경제지도를 바꾸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찾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회사를 창업한 때가 1999년이다. 지금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은 하나같이 창업 10년 안팎의 벤처 기업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벤처 창업이 활성화를 넘어 뜨겁게 불붙고 있다. 중국은 하루 창업기업의 수가 1만 개를 넘길 정도로 창업대국으로 변모했다. 창업 기업이 세계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열풍 속에 단군 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때, 부산에서 눈에 번쩍 띄는 창업 기업을 만나고 싶다. 최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가 626억 원의 몸값을 받으며 다음카카오에 매각됐다. 김기사라는 앱을 개발한 박종환 대표 등은 부산대를 졸업한 지역출신이다. 이들은 왜 부산에서 창업할 수 없었는지 못내 아쉽다.

지역기업에서 혁신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위기다. 지금 부산에서 잘나가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60대 후반 또는 70대의 창업 1세대가 회장을 맡고 있고 아들이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 건설 호황 등으로 수백억 원씩 곳간에 돈을 쌓아놓은 기업도 다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찾아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한 우물을 파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골목대장에 만족하면서 치열하게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실종한 사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회의 땅 중국을 외면하고, 창업과 혁신기업을 찾기 어려운 '3무의 도시' 부산. 부산은 1970, 80년대 신발과 섬유 목재산업 등 눈앞의 호황에 안주하다 미래 산업 변화의 큰 흐름을 놓치고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던 뼈저린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3무의 도시로 전락한 부산을 책임진 지자체와 기업, 대학 등 리더그룹은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아니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