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섬진강 버들가지도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지리산을 돌아본다. 남원 운봉, 산내, 함양 마천, 휴천 지역을 제외하곤 매화가 만개하고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꽃 나들이를 시작했다.

천지간에 벚꽃 가득한 봄날/꽃그늘 아래 서서 생각합니다./내 안에서 환한 꽃 피우는 당신에 대하여/당신 안에 벚나무이고픈 나에 대하여. 백승훈 시인의 '벚꽃나무 한 그루'의 마지막 연이다. 서로에게 환한 삶은 빈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는 삶이다. 환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한 날, 나에 대해 당신에 대해 우리 사회와 이 나라가 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 학년을 맞은 경상남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은 시리기만 하다. 학교별로 각종 설명회와 운영위원 모임이 끝난 뒤 삼삼오오 급식이야기를 하다보면 화가 치민다. 봄날 햇살이 퍼지면 간밤에 살짝 내린 지리산 산중의 서리는 물이 되어 땅으로 스며든다. 아직 밤 기온은 차다.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같다. 경남도 도지사와 지역 의원들, 정치권을 향한 마음자리가 봄볕에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도시락을 싸자!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 수업은 거부하자! 급식을 먹고 급식비를 내지말자! 인근 지역으로 아이들을 전학시키자!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란 가당찮은 궤변으로 4월부터 학교 무상급식이 중단되는 경상남도 학부모들은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무릇 정치는 위민락, 백성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우리 사회도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안착시켜 왔다. 그 민주주의가 대의제로 자리를 잡아 선거를 통해 대리인을 세우고 대리인이 가진 권력은 주민의 위임을 받은 만큼 권한 역시 주민의 편에서 갈등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경남도의 행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위임을 받은 도지사는 막가파식이다. 선거철 표를 의식한 무상급식 공약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하긴 대통령마저 공약을 공수표로 돌리는 마당에 도지사를 탓해서 무엇할까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 밥그릇을 놓고 정치적 시비를 거는 후안무치와 덩달아 깨춤 추는 기초단체 시장 군수, 비판의식 없는 도의원의 행태는 정말 봐주기 힘들 정도다.

대통령이든 도지사든 군수든 사회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니 사회기초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처방이라고 내놓는 것은 하나같이 책임방기일뿐 구조적인 처방전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곳곳에서 비리와 사고로 얼룩지고 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호 사건, 그 숭고한 죽음 앞에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넘어서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리스도교는 지금 사순시기이다. 고난시기이다. 교리적으로 회심의 시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을 하며 자신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압박을 돌이켜 생각하며 희생을 각오한 기간을 기념하는 때이다. 정치적으로 약자와 낮은 자의 편에 서서 미천하고 가난한 이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구조화된 기득권은 그를 십자가형에 처한다. 민중은 오열하고 빈자는 절망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며 새 세상의 모습을 설파하고 그 세상이 왔음을 믿고 행동하라는 그의 말을 의심하고 기득권을 따라 금권을 추구한 민중은 그를 멀리했으며 옆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던 제자마저 그를 부인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의 시대와 얼마나 다를까. 기득권이라는 금권만을 좇고,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는 이기심으로 눈과 귀를 닫아걸고 있지는 않은가. 다수결이란 대의제도 아래 공동의 선에 대한 진지한 소수자의 의견이 무시당하고 있지 않은가. 지역개발과 주민 발전이란 이름을 내세운 지역개발사업의 이익이 정말 사회 구성원들에게 고르게 배분되고 있는가. 땅을 파고, 물을 가르며, 산을 파헤치는 공장 건설과 토건사업들이 맑고 깨끗한 환경권을 지녀야 할 미래 아이들에게 정의로운가.

이런 부분들을 과연 제대로 묻고 따져 왔는지 의문이 든다. 선거기간 정책으로 내세운 스스로의 가치를 부인하는 정치인들을 양산한 책임이 결국 우리에게 있다는 회심을 하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 제3의 홍준표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봄,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는 우렁차고 활기차다. 밤의 시간이 지나고 아침으로 오는 길목을 여는 새들은 어김없이 차오르는 우주로부터 오는 빛의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 햇살이 하루의 시작임을 알리는 일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어둠의 긴 터널은 반드시 사라지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사람들은 공동선으로 회심하고 진화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꽃들이 꽃비를 내리며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다음 봄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