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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사도법관' 김홍섭을 생각한다 /송문석

뇌물·성추행 판사까지 사법 신뢰 상실의 시대

피고인마저도 사랑으로…법관 양심 필요한 오늘, 그의 낮은 자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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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떠돌아 다니며 사는 유목민인 베두인들은 마을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용의자들을 불러놓고 '인두 재판'을 벌인다. 벌겋게 달궈진 인두를 핥게 해 혀가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 유죄이고, 무죄인 사람은 뜨거운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단다. 재판은 '무브시'라는 판관이 주재하는데 사례비로 우리 돈 1만여 원을 받는다. 재판 방식이 무지몽매하기 그지없지만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 운하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무브시가 마녀재판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겁을 줘 사욕을 챙기는 것은 최악의 재판관 모습이다. 법관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재판을 악용해 돈벌이에 나서고 도덕성을 잃을 때 해악은 크다. 변호사와 결탁한 판사,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판사, 독재와 고문을 찬양하는 등의 댓글을 수천 건 사이버공간에 올린 댓글판사, 성추행 판사, 막말판사 등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법률가들이 끊이지 않는 게 오늘날의 풍경이다. 대법원이 며칠 전 '법관윤리강령에 관한 권고의견 10호'를 냈다고 하지만 타인의 죄에는 추상같은 사법부가 제 식구의 허물은 감싸고 도는 모습을 봐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어서 시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서양문화사 '새벽에서 황혼까지'를 쓴 자크 바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사들의 장사꾼화' '기자들의 속물화' '법관들의 모리배화'란다.

김홍섭 판사(1915~1965). 법조계에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검찰의 양심'으로 불린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과 함께 '법조 3성(聖)'으로 꼽히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요즘처럼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법관의 신뢰가 무너져내릴 때면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다. 장면 박사가 예수의 12제자 같다고 해서 붙여준 '사도법관(使徒法官)'이란 별칭이 이름 앞에 따라붙는 사람.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판사' '사형수의 대부' 등도 탈속한 성자같은 천성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몸소 실천한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별명이다.

김 판사는 구도자적 자세로 재판에 임했으며 피고인을 인권보호를 뛰어넘어 사랑으로 대했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을까"라는 고뇌 속에서 법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라면 법관은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1961년 광주고법원장으로 재직할 때다. 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가기위해 난동을 부리고 살인까지 저지른 '경주호 납북미수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묵념하는 자세로 5분 가량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재판장석에 앉아 있는 나와 피고인석에 서 있는 여러분들 중 어느 편이 죄인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불행히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정은 숙연해졌고 재판장의 목메인 말에 피고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실정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하기는 했지만 사형수를 종교적으로 구원하는 데 애를 쏟았다. 박봉을 쪼개 책을 선물하고 가족을 챙겼으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먼저 세상을 하직한 사형수 10여 명의 사진이 고인의 사진 밑에 나란히 놓여 저세상 길을 동반했다.

그의 삶은 청빈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사다 물들인 군 작업복에 흰고무신을 신고 법원으로 출퇴근했다. 가끔 양복을 걸쳤지만 그마저도 장인인 낭산 김준연(전 법무장관)의 윗도리를 얻어다 몸에 맞게 줄인 것이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무짠지 한가지 반찬에 밥을 싼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혼자 먹었다. 법관의 처우가 변변치 않은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조금은 덜 고생할 수 있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처가에서 보내 준 쌀가마니조차 '수도생활'에 지장이 된다며 돌려보낸 사람이었다.

마침 올해가 김홍섭 선생의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년이다. 임상 경험이 깊어지는 의사가 차츰 진료와 투약에 겁을 먹는 데 비유해 법관으로서 법 적용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과녁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에 비유해 모두 백발백중할 수 없고 대신 얼마만큼 중심부에 접근하도록 던질 수 있느냐는 고뇌와 번민을 판사 생활 내내 했던 그다.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횡포와 겁박, 무성의한 재판과 판결문, 법 장사꾼으로 전락한 일부 법관, 법조문만 달달 외워 방망이를 내리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은 손톱 만큼도 없는 냉혈한 법률가들이 상존하는 세상이다. 불의의 시대, '사도법관' 김홍섭 판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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