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 야산마다 전기톱(체인톱)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일선 시·군이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를 제거하는데 앞다퉈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목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쌓은 뒤 약품을 투입하고 다시 비닐로 감싸는 일명 '나무 무덤'을 만드는 인부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산은 늘어난 '나무 무덤'때문에 군데군데 원형 탈모증을 앓는 듯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이처럼 자치단체마다 앞다퉈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재선충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5월)에 앞서 감염목을 완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앞서 경남도도 다음 달 말까지 전체 감염목(7만9000t) 제거작업을 완료토록 시·군에 지시를 내린 상태다.

경남은 재선충 최대 감염지역이라는 오명을 좀처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1997년 함안군 야산에서 감염목이 발견된 뒤 현재까지 18년간 자그마치 310만 그루가 피해를 입었다. 학계에서는 재선충이 부산으로 반입된 수입목을 통해 유입돼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국으로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은 재선충 매개목인 소나무가 많은 데다 온화한 날씨 등으로 인해 순식간에 확산돼 현재까지 완치를 못하고 있다.

재선충 방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도 높다. 올해 재선충 진화에 실패한다면 최종 방어선인 국립공원 지리산과 가야산까지 뚫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빼어난 산림환경을 자랑하는 경남의 이미지는 물론, 우리나라 소나무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이 때문에 산림청에서는 책임담당관 3명을 김해, 밀양, 거제시 등 3개 시에 각각 파견해 방제 지휘에 나섰다. 경남에는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은 재선충 담당관이 파견됐다.

감염목이 제거됐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훈증 처리된 감염목 더미를 처리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감염목 더미를 감싼 비닐이 바람이나 야생동물에 의해 벗겨질 경우 재선충이 다른 곳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선충의 박멸을 위해서는 감염된 나무를 완전히 파쇄 처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은 감염목 더미를 산 아래로 운반해 파쇄하거나 펠릿(목재연료)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처리 실적은 그리 높지 않다. 감염목 더미 대부분이 험준한 야산에 위치해 저지대로 끌어내리기 위한 비용 부담 때문에 전체 20만2000t에 달하는 감염목의 60% 이상이 '나무 무덤'으로 방치돼 있다.

도내 3곳의 펠릿제조 공장은 목재를 제대로 구입하지 못해 가동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경남도는 올 연말까지 밀양시에 훈증목을 건축자재로 활용하는 피해목 활용시설을 20억 원을 들여 설치한다. 하지만 감염목 더미를 산 아래로 운반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감염목 제거를 위해 다양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훈증목 운반비용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안이 우선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어렵다면 경남도와 지자체가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근원적인 재선충 박멸을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시급하다. 지난 18년간 나라 산림을 좀먹는 재선충을 박멸하고 감염목을 재활용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