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그 자식들 정말 나쁜 놈들이야. 나하고는 소주잔 건네면서 건성건성 대하더니 자기들끼리 따로 모여 양주 마시는 거 있지. 에이 나쁜 놈들!" 방송 출연으로 친숙해진 한 인사의 증언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던 언론인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고 호남출신이며 나름 진보성향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는 틈만 나면 친노 성토에 열을 올린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 친노라는 명명이 익숙해졌다. '친노는 종북이다. 친노는 영남패권주의다. 친노는 1980년대 극렬 운동권들이다. 친노가 득세하면 나라 망친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다음 한마디면 족할 것 같다. '친노는 불가촉천민이다!' 쏟아지는 조롱, 멸시, 증오 속에 친노는 '어둠의 자식들'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다. 이 어둠의 자식들이 또다시 제 1야당 당권을 거머쥐었다. 이른바 친노의 수장이라 불리는 문재인은 차기대권 잠룡 지지율 가운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소주 따로, 양주 따로 대접한다는 친노들의 위선적 행태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마침 그 시절 청와대 내에서 언론을 담당했던 소위 '친노인사'를 알기에 전화로 확인까지 했다. 그의 반응은 "푸하하"였다. 별 소소한 트집을 다 잡는다는 듯이 어이없어 하며 그가 했던 반응을 정리하면 '그 출입기자가 싫었다'였다. 소주, 양주 차별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매사 연고 따지며 형님 동생 운운하는 그 기자의 행동이 전형적인 구태로 보여 함부로 대했다는 증언이다. 상황이 짐작되어 한참 웃었다.

종북몰이로 진보정치세력의 중심축을 궤멸시킨 박근혜 정부의 다음 타깃이 친노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친노를 붕궤시키지 않는 한 정권연장은 불가능할 테니까. 범보수세력의 친노경계는 애초부터 확고한 터이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노를 함께 붕궤시킬 우군이다.

우군은 뜻밖에도 야권 내부에 있을지 모른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때 적나라하게 보였듯이 민주당계 내부의 반노감정은 뿌리 깊다. 총부리를 새누리당이 아니라 자당 내부의 친노를 향해서만 겨누는 야당인사도 꽤 있다. 그들의 언행을 보면 차라리 집권을 못할지언정 친노 득세만은 막아야겠다는 의지가 결연해 보인다. 도대체 친노는 무슨 원죄를 지닌 것일까.

친노의 원죄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힘을 갖고 있는 친노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지 따지기 앞서 먼저 물어볼 것이 있다. 친노가 누구지? 아니, 친노라는 계파가 실제로 있기는 한 건가? 대뜸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이끈다는 계파 조직원을 떠올려 보라. 이해찬, 한명숙이 그의 조직원인가. 정청래, 진선미가 그의 수하인가. 혹시 봉하마을 묘역 주변에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 암약하고 있는 것인가.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의 온갖 신묘한 공략에도, 야권 내부의 어떠한 총질에도 친노는 사멸하지 않을 것 같다. 친노는 유령이니까. 유령은 하드웨어가 없으나 소프트파워로서 실체를 드러낸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유럽을 휩쓰는 유령'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이었다면 친노라는 유령은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광범위한 반기득권 의식을 뜻한다. 그것이 친노의 원죄이자 힘이다.

범야권의 모든 정파가 기득권 극복을 외치지만 리더의 죽음으로 결집한 친노만큼 선명한 의지를 지닌 세력은 없다. 여의도 정치정파로서는 대단히 모호하지만 시민사회 전반에 친노는 모세혈관처럼 뻗어있다.

한때 폐족을 선언했던 친노를 중흥시키는 주체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집권 후 역사의 시계를 박정희 시절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것은 기득권 강화를 의미한다. 기득권 강화로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것이 서민, 중산층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상당수가 공멸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것이 박근혜에 대한 부정평가 63%로 표현되고 있다.

대통령은 친노를 키워주고 새누리당은 내부균열의 조짐을 보인다. 분당 걱정은 새정치연합이 아니라 여당이 해야 한다. 이제 문재인 대표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DJ, YS 혹은 노무현이 아니다. 선봉에서 적진으로 돌파하는 장수 타입이 아니다. 공존과 연대, 그것이 문재인 정치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친노가 기득권 타파를 위한 총알이 되고자 했다면 문재인은 그 총알을 탄띠에 두르고 기득권과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봉하의 묘역에서도 같은 바람을 갖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