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 축구팀 소속의 이정협은 왜 이방인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만 띄었을까. 우리 대표팀 감독들은 왜 못 봤을까. 2002년 히딩크에 이어 2015년 슈틸리케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표다.

우리 감독들은 선수들을 이름값으로 봤다. 반면 슈틸리케는 자리를 우선했다. 이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는 이런 재능을 가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보니 장신 공격수 이정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슈틸리케가 봤다면 우리 감독들이 못 봤을 리가 없다. 흙 속의 진주를 보려는 수고로움과 과감히 발탁하려는 의지가 없었기에 '군데렐라' 이정협이 이제서야 등장한 것이다.

우리 정치는 어떤가.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보면 우리 감독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먼저 인사를 보자. 고위직에 들고나는 이들이 특정 그룹 내에서 맴돈다. 숱한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이 건재하고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주인공인 '문고리 3인방'도 여전하다.

이완구 국무총리 내정자도 마찬가지다. 대선 기간 때는 야당과 호남을 챙기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호남 총리' 발언으로 당 안팎에서 비난을 받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말하고자 했던 바는 분명하다. 영남 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다. 대통령이 눈을 조금만 돌리면 인사는 훨씬 다양해지고 적재적소에 가깝게 된다. 용인(用人)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는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경제 살리기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정부의 논리는 수도권과 대기업을 잘 키우면 경제가 살아나고 나중엔 비수도권과 서민들까지 방안 전체가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권 규제는 당연히 풀어야 한다. 전형적인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다. 경제 살리기가 비수도권이나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안중에 없다. 낙수효과의 또 다른 이름이 불균형발전론인데도 말이다.

이런 사고가 굳어져 있으니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뜩이나 쪼들리는 비수도권의 살림살이에서 돈을 빼 수도권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장남이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둘째, 셋째아들의 전세를 줄여 남은 돈을 장남에게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축구든 정치든 요체는 균형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힘들다. 축구로 치자면 공격진과 허리진, 수비진 사이의 조화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는 가뜩이나 무너진 균형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에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을 뚫은 작업이다"라고 했다. 열정이란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 의미의 열정, 즉 대의에 대한 헌신이다. 균형적 판단이란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실정에 비유하자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밀착되지 않는 균형 감각에 근거한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정치라는 것은 그런 두 가지 전제를 갖추고서도 단단한 널빤지에 오랜 시간을 들여 서서히 구멍을 뚫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는 이런 균형 감각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느낌이다. 열정은 있으되 객관적이지 못한 주관적 열정이다.

주관적 열정이 앞선 대통령은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면 "나는 잘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못했거나 주변 여건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 십상이다. 빗나간 신념윤리다. 지지율 20%대가 현실이 된 것은 나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책임윤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슈틸리케처럼 냉정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정국을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쉽지만 대통령은 그런 여유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사실 슈틸리케는 감독으로서의 성적표는 별로였다.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맡았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지도 못했고, 스위스 독일 스페인 카타르의 클럽팀 감독으로서도 단명했다.

그랬던 슈틸리케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다산 정약용에 비유되는 파격 대우를 받고 있다. 슈틸리케가 깜짝 발탁한 이정협도 어차피 우리 선수다. 기존의 우리 자원으로 이룬 과분한 명예라 우리 얼굴이 더 화끈거린다. 히딩크도, 슈틸리케도 우리 대표팀 사령탑을 계기로 세계적 명장 반열에 오르겠다. 우리도 그들에게서 축구 외에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