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관객이란 '영화를 보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란, 스크린 앞에서 넋을 놓고서 팝콘을 먹어치우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에 담긴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기억하겠다는 영화적 약속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세계 영화인만의 축제가 아니라,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웃음과 한숨, 기쁨과 근심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BIFF를 사랑하며 지지하는 관객은 BIFF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참신하고 기발한 영화적 충격과 영상적 즐거움만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통해 오대양 육대주를 건너 이 먼 부산까지 달려와 준 이웃 관객과 동료 관객의 삶을 진지하게 응시하며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향해 멀리서나마 응원의 박수를 쳐주기 위해, 관객은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여 부산을, 그리고 BIFF를 찾는 것이다.

이용관은 BIFF의 리더이다. 만약 영화제 운영과 관련된 행정적인 차원에서 그의 미숙함이 적잖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볼멘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 그리하여 시정의 차원에서 그의 거취가 논의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응당 그리하면 될 일이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제적인 행사가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지 부산 시민이 너무 어두웠음을 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뒤늦은 반성을 하게 된다. 축제라고 좋아하기만 했지, 그 제반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시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뒷짐만 진 채 너무도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태의 핵심이 바로 이것, 즉 이용관의 부덕과 무능이라면 이는 부산시와 시민, 그리고 영화제가 조금 더디더라도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용관의 퇴진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항간에 떠도는 말들처럼 지난 영화제 기간 상영된 특정 영화와 관련이 있다면, 이제는 '시민'이 아닌 '관객'이 분노해야 할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다른 이들의 삶을 알아가고 그에 공감을 표할 권리와 의무가 관객에게는 있기에, 작년 한 해 한국에서 일어났던 사건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주제로 삼은 '화제작'에 대한 상영은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의 선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평범한 관객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이러한 선택에 대해서 일종의 보복성 인사 조처를 취한다는 것은 관객의 '볼' 권리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 저지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영화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특정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를 굳이 정부 차원에서 미리 판단하여 지침을 내려줄 필요는 없다. 관객 또한 입이 있고 눈이 있으니, 볼 것을 보고 할 말은 한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오롯이 관객에게 속한 특권이며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BIFF의 수장인 이용관에게는 특정 영화 상영 철회의 권한이 없다. 만약 영화제 기간에 그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영화인과 시민 관객이 나서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을 것이다. BIFF의 오랜 파트너인 부산시가 이런 점에 무지했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깝다.

부산시는 이용관의 사퇴 종용에 관하여 어떤 연유에서 그러한 조처를 하고자 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시민과 관객에게 밝혀야 한다. 나아가 관객의 '볼' 권리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침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치명적으로 노출된 이상, 이번 사태로 훼손되고야 만 관객의 권위와 권리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복권하며 존중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부산의 시민이기 전에 세계의 영화 관객인 우리는, 이번 사태로 위기에 처한 한국 관객의 관객됨을 지지하고 수호하기 위해 지역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 '영화를 보는 이들' 즉 관객으로서 굳건히 연대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 나갈 것이다.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던 어두운 문화의 암흑기를 살아낸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면, 이번 사태를 액면가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 염려가 기우이기를, 이번 사태가 괜한 오해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부산시의 성실한 답변과 쇄신을 기대한다.

모퉁이 극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