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우성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말한다. 그냥 바쁘단다. 시간이 흐르는 강물, 쏜살같다고도 한다. 후회, 한숨, 한탄, 아쉬움이 섞여든다. 엊그제 연초였는데 벌써 연말이다.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니 시계도 빨리 가나 싶다. 뭔가에 쫓기는 기분, 이건 정상이 아니다.

사회적 시간이 생물학적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다. 내일에 안달하는 20대나, 서른 즈음의 무르익은 청춘이나, 혹하지 않는다는 40대나, 하늘의 명을 따를 나이인 50대나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쩔쩔맨다. '시간이 금이다' '세월이 약이다'고 말해본들 황망함은 가시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영화 두 편을 봤다. '인터스텔라'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들이다. 두 편 모두 공교롭게도 시간을 통찰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현대 물리학에 기반한 우주적 상상력을 감동적 가족드라마로 풀어낸 SF영화다. 영화 속 시간여행이 흥미롭다. 중력이 커지면 시간은 상대적으로 늦게 흐른다고 한다. 중력이 강한 별에서의 한 시간은 중력이 약한 별에서 몇 년의 시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블랙홀에 갇혀 동면하다 깨어난 아버지가 딸보다 더 젊어진다. 우주 공간의 가상 터널인 웜홀을 통해 이동을 한다거나 블랙홀을 통과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은 이 영화의 백미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영화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시간의 상대성은 지상의 유한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실제적 삶을 바탕으로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그려낸 다큐 영화다. 2012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촬영이 진행됐다. 막바지에 할아버지의 실제 죽음은 영화 외적으로 슬픈 순간이었다. 진모영 감독은 그것조차 사랑이란 코드에 녹였다. 정겨웠던 두 노친네의 이야기를 젊은 층 관객들이 많이 보고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한다. 연애를 짧게 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삶 속에서 피어난 '질긴 사랑'이 감동을 안긴 것이다. 툭하면 갈라서는 세태 속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결핍을 풀어준 것이 주효했다. 영화는 어떤 픽션이나 금언, 철학에 기대지 않고 노부부가 온몸으로 관통해 온 76년간의 세월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어떤 창작 콘텐츠도 대체할 수 없는 불멸의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세월이 빠르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두 영화는 시간의 상대성과 세월을 이기는 사랑법을 가르쳐준다. 시간의 상대성은 과학이론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바다. 흥분해서 야단치는 입장과 야단맞는 입장에서 느끼는 시간이 같을 수 없다. 사랑에 빠져 안달이 난 남녀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권태기에 빠진 남녀에게는 시간이 더디다. 그렇게 여겨진다. 시간이 만드는 마법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보듯, 시간의 상대성은 생각 너머의 것을 생각하게 하여 일상에 활력을 안겨준다. 영화 '님아…'는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늙어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전국노래자랑'을 이끌고 있는 송해 선생은 최근 한 예능프로에 나와 사회자가 나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내 나이? 듣기만 해도 팔팔한 88이야." 1927년생이니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보다 세 살 오빠, 탤런트 이순재보다 12살 형님인 셈이다. 롱런의 비결에 대해 그는 "나이를 잊고 산 것이다. 청춘은 나이와 무관하다"고 했다. 그에게 시간은 빠른 게 아니라 팔팔한 것이다. 매일 BMW(버스, 메트로, 워킹)를 이용해 건강을 지킨 결과다.

시간의 열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용권'을 나눠준다. 이용권은 열차를 타고 있을 때만 유효하다. 어떻게 쓰느냐는 자기 몫이다. 시간의 열차는 한 번 떠나버리면 후진이 없다. 따라서 과거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 집착할 필요도 없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중요할 따름이다. 일상의 행복은 시간을 의미롭고 창조적인 동력으로 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행복한 사람의 하루하루는 날마다 좋은 날일 수밖에 없다.

한데,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 '시간(세월)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라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3차원 실공간상에서는 시간이 실존하지 않지만, 편의상 사용하는 허구의 개념으로 본다. 그렇다면 허구를 붙잡고 우리가 그렇게 안달복달했다는 건가. 아니다. 잡히지는 않지만 '있게(being)' 하고 '되게(becoming)' 하는 힘이 곧 시간이다. 허투루 쓰거나 탕진하면 바로 후회하게 되어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가는 시간을 탓할 게 아니라 쌓인 것을 톺아볼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 빠르다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신라의 국사였던 원효 스님의 탄식을 기억해야겠다. "오늘도 저물었구나. 아침부터 왜 서두르지 못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