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개○○이다'. 페북의 한마디에 댓글이 21개가 달린다. '안다, 닥치라, 잘 아네 롤○○, 셀프 저격, 너 개○○ 아니다^^'. 내게는 얌전하고 단정한 제자로 기억되는 한 남학생의 셀프 열등감 고백은 페친들을 웃게 만들고 두 번 죽이는 위로를 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몰려서 찍은 생일모임 사진 밑에도 어김없이 '○○ 진짜 못생겼네, ○○ 뚱뚱하게 나왔다' 등 그들 나름의 반어적이면서 정다운(?) 욕이 넘친다.
사이버 세계가 확장되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자리가 좁아져 갈수록 아이들의 언어세계는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욕설과 인신 공격적 언어가 정담(情談)인 것처럼 자리잡고 있다. 비속어와 욕설은 여학생 남학생을 가리지 않고 초중고를 나누지 못할 만큼 아이들에게는 이미 일상어가 된 지 오래이다.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청년들이 버릇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을 염려하는 어른들은 먼저 욕 권하는 우리 사회의 파괴적 정서와 인터넷 안에서의 무차별 언어공격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등급분류의 세부요소 중 대사 부분에서 저속한 언어, 비속어 등의 빈도와 표현정도가 어떠한지를 살펴 등급분류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은 특히 청소년 보호라는 목적에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일이다.
문제아 뒤에는 문제부모가 있듯이 욕하는 아이들 뒤에는 욕하는 어른들이 있고 욕 권하는 사회가 있다. 아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인터넷 게임, SNS, 유해 영상물 안에 저속한 표현이 넘치고 일상 언어에서 비속어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오히려 외계어를 쓰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을 살면서 바른말 고운말에 대한 순정을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욕설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불유쾌하고 파괴적인 강렬한 정서를 원색적인 비속한 언어로 내뱉고자 할 때 주로 사용한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 가벼운 욕설이 일종의 놀이로 또래들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청소년과 성인들이 욕설을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 퇴행을 허용함으로써 무의식적 충동을 그대로 내보이고 이를 통제하는 방어적 기제의 활동을 통제해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돌아가 적대적인 생각과 감정을 유쾌하게 방출함으로써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영화 '청춘예찬'(청소년 관람불가)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세 남자의 대화 내용이 80% 이상 욕설과 비속어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이러한 표현의 의도가 친밀함과 긍정적인 의도를 나타내는 지점이 상당히 있다는 점에서 비속어와 은어, 욕설 사용은 결국 언어표현이 일어나는 발화 맥락에서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사는 폭력성, 선정성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의 대사를 좀 더 순화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가 묻고 싶어진다.
실제 청소년들의 비속어 사용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진다. 너무 자주 사용하다 보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화의 시작과 끝이 비속어로 시작해서 비속어로 끝나는 양태다. 이러한 언어현실은 영화 속 대사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이 나오는 영화에 욕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최근 개봉작 '거인'은 무책임하고 뻔뻔한 부모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궁상맞은 집을 떠나 스스로 '이삭의 집'이라는 그룹홈으로 들어온 열일곱 소년의 살아남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오직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시설의 엄마 아빠에게 말 잘 듣는 아들 노릇을 하고 신부가 꿈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완벽하게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살아간다. 주인공 소년의 내면과 행위에 집중하고 있어서 불필요한 폭력이나 최근 수위가 높았던 청소년 영화에서 보이는 자극적인 장면이 거의 없지만 대사면에서 욕설이 다소 빈번하다.
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체이자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성숙한 사회는 말이 생각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해도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는 언어의 유통구조가 살아있어야 한다. 가벼운 욕설은 영화에서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만큼 거의 일상어처럼 사용되고 있고 실제 많은 청소년이 영화 '롤러코스터' 속 육두문자맨을 능가하는 욕의 화신들인 경우가 많다. 영화는 사회적 언어현실을 반영하고 영화 속 언어는 다시 현실로 스며들어 사람들의 몸에 무의식적으로 새겨진다.
아이들은 자라서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그 아이들의 몸에 거칠고 상처투성이의 말들이 저장되고 뿌리를 내려 입에 칼을 품고 있는 존재들로 성장한다면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보이지 않는 피를 세상에 뿌리게 될 것인가 염려스럽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욕 권하는 사회에 응답하는 청소년들의 언어세계를 단순히 버릇없는 요즘 청소년들의 일반적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어른들이 먼저 말과 글을 순화할 수 있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분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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