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열린 지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데 이어 폐회식을 앞두고 조선노동당의 서열 2, 3, 4위가 총출동해 한국의 안보실장, 통일부 장관 등 대북정책의 실세들과 '깜짝' 면담을 하고 돌아갔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사일과 장거리 로켓을 쏘아대며 무력으로 위협하고 우리 대통령을 온갖 욕설로 비방하더니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역사를 되돌아 보자. 헝가리와의 수교를 필두로 시작한 대한민국의 북방외교는 1991년 역사적인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으로 이어졌다. 이는 동북아의 냉전시대 종식을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한민족의 화해와 협력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떠했나. 몇 번의 공동선언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전상황 하의 긴장과 대립이 거의 해소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군사도발과 대화를 병행하는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즐겨 사용해왔다. 이는 말 그대로 상황이 불리할 때는 대화를 제의하고,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종의 기만전술이다. 김일성은 대남 위장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핵 기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기술도, 자금도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 1953년 3월 옛 소련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협정을 체결하고, 1962년 평안북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치한 것이다. 또한 공존을 이야기하면서도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등을 일으켰다.
김정일 시대였던 1996년 9월에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있었으며 2006년 10월에는 플루토늄 방식으로 제1차 핵실험 실시했고 유엔 안보리는 즉각 대북 제재결의 1718호를 채택했다. 그러자 2년 뒤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했고 곧이어 보란듯이 외무성 대변인은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중'이라고 발표했다. 서해 평화수역 설정을 이야기하다가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자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1년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은은 어떠한가. 2013년 3차 핵실험을 강행,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다가 돌연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평양에서의 애국가 연주 허용, 이산가족 상봉 행사 합의 등의 유화 제스처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북측의 입장 변화로 급거에 취소됐고 그 이후 특별히 진전이 없다. 최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함정 간 교전과 경기도 파주 지역의 대북 전단 살포 총격전, 군사분계선(MDL) 총격전 등 크고 작은 군사충돌이 있었다. 모두 대화와 화해의 제스처 직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북한이 밉든 곱든 통일의 파트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것을 국가안보 우선주의 시각에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화를 통해 교류를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국제사회에 안전하게 편입할 수 있도록 개혁과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미래지향적이고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조성할 수 있고 통일대박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역시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은 그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대화와 행동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란다. 첫째, 대북 정책을 '당당하게' 추진하라. 북한의 도발과 인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둘째, '투명하게' 진행하라. 정부의 공보활동과 대북정책의 원칙에 대해 국민들이 믿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남은 재임기간에 연연하지 말고 평양을 방문한다든지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든다든지 하는 확실한 결단을 내려달라. 당대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일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숭고함과 의미를 가진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한다. 첫째, 속임수나 꼼수에 의존하지 말고 멀리 보고 대화에 임하라. 역사적으로 멀리는 알렉산더로부터 가까이는 조선시대 왕에 이르기까지 젊은 '군주'들 가운데 속임수와 꼼수로 융성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둘째, 대한민국을 가볍게 보지 말라. 대한민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성숙되고 강력한 사회이다. 셋째,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조건없이 핵을 폐기하여 인민을 위한 통 큰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전문 연구기관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통일 한반도의 경제력은 세계 7위로,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노벨평화상이 통일 한반도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지길 기대한다.
한중경제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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