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이 있다.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말에는 '군대'라는 곳이 한 개인의 성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대중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요즘은 군대에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는커녕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 하면 감사해야 할 분위기다. 최근 군부대 내 총기 사건, 가혹행위 등의 인권문제가 불거지면서 20대 청춘들을 '사람이 되게 하던' 군대가 많은 이의 질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후 관계와는 무관하게 사건 당사자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어떻게든 강조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진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군대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들의 문제를 미리 인지하지 못한 병무 당국의 책임도 묻고 있다.
필자가 징병전담의사로 근무했을 당시에는 일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병역 관련 비리가 사회적 이슈로 가끔 대두하였을 뿐, 요즘처럼 군대 내 가혹행위나 병영 문화 개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이들을 선별하여 치료로 연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고 있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2007년부터는 병무청마다 임상심리사를 배치하여 기존에 시행해오던 선별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수검자를 대상으로 좀 더 면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밀검사 대상을 선별하고 여러 기록을 토대로 최종적으로 신체 등위를 판정하는 과정이 강화된 셈인데, 그렇다면 신체검사를 통해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진 이들을 모두 선별해 낼 수 있을까? 한 번의 징병신체검사에서 개인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모두 알아내 현역 복무의 부적응 여부를 판단해 내는 것이 가능할까?
우울증이나 조현병(정신분열병) 등의 정신과적 질환은 단일한 원인으로 발병하지 않는다. 유전적 소인 등의 생물학적 취약성과 심리적 스트레스,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적 체계 등의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비로소 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는 증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유리창을 가지고 있는데 그 두께가 모두 달라 어떤 이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그 유리가 깨지는 반면 다른 이는 큰 충격에도 끄떡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은 마음의 유리가 얇다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어떤 충격도 받지 않는다면, 평생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군대와 같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더욱 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질환자를 색출하자' '폭력성향 못 거르는 징병제도' 등 비난조의 자극적인 문구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취약성이 있는 사람, 즉 마음의 유리가 얇은 사람을 가려내는 데는 '얼마나 얇은 사람까지 가려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설령 잘 가려낸다 해도 취약하지 않다고 판정된 이들에게 차후에 가해지는 충격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개인이 판정 이후에 겪게 되는 여러 아픔과 충격을 얼마까지 고려해서 가려야 하는지의 문제 역시 남는다.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거나 관리해 나가지 못한다면 입대 전 선별검사의 의의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이들에 대한 관심과 전문적인 관리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입대 전 선별검사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후 군 생활에서 겪게 되는, 또는 겪을지도 모르는 여러 어려운 상황에 적응해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여러 방면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한 광고에서는 입대를 앞둔 이들을 향해 '2년, 생각보다 금방이야. 청춘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라는 낭만적인 문구를 선보이고 있다. 입대를 앞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과연 이 문구로 얼마나 위로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이 다시 자연스레 우리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더 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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