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애환을 풍자한 방송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렛잇비(letitbe)'. 여기에서 감초같은 말은 '야근' '당직'이다. 이 대사가 나오면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만큼 일과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는 뜻일 게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2163시간(평일 하루평균 8.7시간)으로 세계 최정상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두 번째다. OECD평균치(1770시간)의 1.3배, 최소 근로시간인 네덜란드(1380시간)의 1.6배에 이른다. 최근 영국에서 저명한 공중보건전문가가 '주4일 근무제' 도입을 제기,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우리에겐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지난달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2013년 세계 웰빙지수'의 나라별 순위를 내놨다. 인생목표, 사회관계, 경제상황, 공동체 안전·자부심, 건강 등 모두 5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다. 한국은 135개국 중 75위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36위) 필리핀(40위) 태국(44위) 인도(71위) 같은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뒤처졌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한국인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세계적 수준과 거리가 먼 셈이다.

이에 비해 국민의료비는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07~2012년 증가율이 6.6%로, 같은 기간 OECD 평균(2.3%)의 약 3배다. 어느 나라 국민보다 병원을 자주 찾고 오래 입원한다는 의미다. 자살률은 10만 명당 29.1명으로 최고 높다. OECD 평균과 비교해 17명이나 많고, 10년 연속 1위로 참담한 지경이다.

이는 '국내 성인 8명 중 1명은 우울증 경험이 있다'는 질병관리본부 보고서와 맥을 같이한다. 우울증과 자살은 동전의 양면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추세를 볼 때 우리나라는 특정 연령대가 아니라 전 연령층이 우울증에 취약하다"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마치 '일리히의 법칙'(인간의 활동은 어느 한계를 넘어면 효율이 감소하고, 더 나아가서는 역효과를 낸다는 뜻)이 한국인에게 들어맞는 느낌이다.

이처럼 의료비가 급속히 늘다보니 어느새 '국민의료비 100조 원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한국의 국민의료비는 2012년 기준으로 97조1000억 원을 기록했다. 12년 전(26조8000억 원)에 비해 3.6배나 증가한 규모다. 정부는 이에 맞춰 제도를 개선하고 투자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 국민의료비 중에서 공공재원(건강보험 등) 비중은 54.5% 수준으로, OECD 평균(72.3%)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비중(35.9%)은 OECD 평균(19.0%)을 크게 웃돌고 있다. 게다가 공공재원 비중은 2010년(56.6%)을 정점으로 해마다 조금씩 감소하는 양상이다. 공공재원에서도 정부 비중은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회보장기금으로 충당하는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비 증가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는 증가율이 너무 가파르다. 2020년에는 의료비가 242조6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전망까지 나와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이를 수 있다. 공공의료가 미약한 우리나라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병원의 90% 가량(병상 수 기준)은 민간 부문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의료의 천국' 미국(75.1%)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병원들의 영리 자회사 허용, 원격의료 등 의료영리화를 부추기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저소득층 환자를 위한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의 의료정책이 상업적인 논리에 휘둘린다. 글로벌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고 정작 의료비 상승에는 무덤덤한 것 아니냐"는 중견 의료인의 비판은 통렬하다.

세월호 참사가 준 교훈의 하나는 공공성 강화다. 공공성이 뒷전으로 밀리고 '돈의 논리'에 함몰되면 국민 생명과 안전이 한순간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의료분야도 마찬가지다. 급등하는 국민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려면 공적인 영역을 넓히는 게 옳은 방향이다.

회식 건배사 중 재미난 게 있다. '스마일'. 스스로 웃고, 마음껏 웃고, 일부러 웃고. 건강을 위해 웃자는 의미다. 요즘 시대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라는 '렛잇비'의 노랫말처럼 '돈 안드는' 웃음이 몸에 좋은 약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웃고 넘기기에는 세상사가 그리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