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관련한 해양산업의 핵심은 무얼까.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게 해운업이라고 본다. 40년간의 해양물류를 직접 해온 끝에 내린 결론이다. 해운은 신조선 발주를 통해 조선업의 흥망을 좌우한다. 바다에 뱃길을 여는 것 자체가 무역이니 해운업이 세계경제를 움직인다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해운을 보면 우리나라가 갈 길이 보인다. 항만물류로 먹고사는 부산으로선 숙명이다. 해운업은 대규모 투자와 운항에 위험이 동반되는 특성상 보험, 선박금융 등 금융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선박보험과 선박금융의 규모는 조선업보다 훨씬 크다.
최근 부산 문현금융단지에 63층짜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들어섰다. 대한민국의 정책금융 기관들이 이곳에 총집결된다. 특히 주목되는 건 선박금융이다. 서울과 차별화해 부산은 해양·선박·파생상품 중심이다. 선박금융은 지난 대선의 화두 중 하나였다. 선박금융공사 부산 유치가 대선 공약이었지만 무산됐다. 대신 해양금융종합센터와 해운보증기구가 들어오게 됐다. 규모가 작아져 아쉬움이 있지만 이걸 잘 키우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본다. 울산, 거제를 낀 조선업의 중심지 부산과 선박금융의 만남은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이즈음에서 세계 해운업을 살펴 보는 건 의미가 있다. 해운업의 투톱은 머스크와 MSC다. 세계 1위 머스크가 덴마크 회사라는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선박 수만 무려 600척으로 운임지수를 손아귀에 쥐고 해운업을 호령한다. MSC는 더 특이하다. 바다도 없는 내륙국가 스위스가 세계 2위의 MSC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비중이 13% 정도로 머스크에 약간 뒤처진 정도다. 놀랍지 않은가. 덴마크와 스위스 두 나라는 모두 인구 규모가 작은 나라다. 그런데도 국가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해운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박금융이 그 힘이란 건 놀라운 사실이다. 10위권 내에는 프랑스, 대만, 중국, 독일, 싱가포르, 한국, 일본이 있다. 그야말로 유럽과 아시아의 구도다. 숫자로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해운업 경쟁력은 한참 떨어진다. 선박금융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선박금융이 곧 국가 경쟁력인 셈이다.
영국계 다국적기업 지옌(Z/YEN)의 평가는 눈이 번쩍 띈다. 금융도시 부산의 경쟁력을 세계 83개 금융도시 중 27위로 평가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성장 잠재력 부문에서 세계 2위로 꼽았다. 싱가포르, 서울까지 제쳤으니 까무러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쉽게 믿기 힘들지만 선박금융과 파생금융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대충 살펴봐도 선박금융의 중요성은 감지했으리라 판단된다. 그 살인적 매력에 침이 꼴깍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달성하는 건 간단한 게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철저한 준비, 차별화 등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은 해운보증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정부 계획은 발표됐지만 내년도 정부예산 1000억 원이 기획재정부 심의과정에서 잇따라 무산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9월 중 3차 심의가 예상돼 있는데 부산시와 부산출신 국회의원들의 분발이 촉구되는 대목이다. 해운보증기구의 설립재원은 정부 2700억 원, 민간 2800억 원 등 5500억 원으로 5년에 걸쳐 갹출하게 돼 있다. 주로 선박건조 자금 중 후순위채권 매입이나 지분투자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계획돼 있는 해양금융종합센터와 금융전문대학원 설립도 착실하게 진행해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대규모 국제금융행사를 개최해 노하우를 쌓아가는 한편 국내외 민간 금융회사를 유치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선박금융과 KSF선박금융을 해양금융종합센터 설립 시 함께 이전한다면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
필자는 40년 동안 해운업 분야에서 일해 왔다. 독일, 덴마크 등 해운업이 발달한 유럽 여러 나라는 하나같이 선박금융이 잘 발달한 나라들이다. 선박금융은 철강, 항만, 조선기자재, 선박용품 등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발시키는 핵심산업이기도 하다. 부산과 대한민국의 100년 대계로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다.
로이드 보험사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보험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뒤 영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보험의 첫 출발은 선박을 대상으로 한 해상보험이었다. 1687년 에드워드 로이드는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근대적인 보험의 출발점이었다. 로이드는 세계 최고의 재보험사, 선박보험 회사에다 선박금융 부문의 선두주자다. 이 회사 하나의 매출이 한국의 조선업 전체와 맞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국의 건재함은 어쩌면 로이드에도 상당 부분 의존하는지 모를 일이다. 부산이 로이드 같은 회사 하나만 키우면 금융도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100년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은산해운항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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