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라'. 이리 논문 제목을 정하면 아마 재미있을 듯하다. 우선은 구해야 하니 지구 위기를 가정해야 한다. 거기에다 어떤 위기냐는 게 있어야 하므로 위기 상황에 맞는 해법이 필요하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고,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는 게 요즘의 추세이니 마냥 황당한 것만은 아니지 싶다.
온난화가 주범이라면? 물론 지구를 식혀야 한다.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독일 발명가 레트너는 배에 싣는 바다 안개 유발장치를 개발했다. 염분이 함유된 안개로 햇빛 반사량을 늘리는 것이다. 유황을 구름에 살포해 인공구름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방법이다. 원반 16조 개를 우주공간에 설치하자는 둥, 사막과 북극을 하얀시트로 덮자는 둥, 탄소를 흡수하는 플랑크톤을 증식시키자는 둥 안은 많지만 정답은 없다.
또 이런 건 어떤가. 혜성이나 소행성을 지구 주변으로 스쳐지나게 해 지구 궤도를 바꾸는 것이다. 어이가 없지만 이걸 제안한 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다. 영화 '코어'에는 지구의 회생을 위해 지구 핵에 핵폭발을 일으키는 방법을 보여 준다. 엉뚱하지만 지구의 속살을 탐험하는 재미는 있다.
두 개의 세계에 대해 논하는 건 어떨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말이다. 빙산은 흔히 수면 위의 부분이 아랫 부분의 10분의 1로 통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11분의 1이다. 우주 등 자연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이보다 훨씬 크고 방대하다. 인간의 지각은 그렇게 보잘 게 없다.
지하세계 역시 같은 경우다. 지상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지만 지하는 감지가 어렵다. 알 수 없는 세계, 그건 곧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상과 지하가 선악으로 대별되는 건 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한데, 지하세계가 오히려 선에 가깝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산업혁명의 기폭제는 한 장의 지질도였다. 윌리엄 스미스라는 청년이 최초로 작성한 이 지하세계 지도로 이용 가능한 자원의 소재가 밝혀진 것이다. 생태계 역시 지하의 역할이 크다. 지렁이, 개미, 박테리아 등 땅속 생물은 지구 생명유지에 필수 존재다. 이들이 척박한 토양과 자연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유엔 보고서가 있었다.
결론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중요성이다. 인간세계라고 뭐가 다를까. 과학이 발달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한다'. 이러면 너무 멀리 간 건가. 나라가 발전할수록 그 중요성은 더해진다. 미래는 땅속, 바닷속을 아는 자의 것이다. 우리가 좋아라고 하는 선진국도 이걸 모르고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부산 땅에 살면서 갑갑함을 느끼는 것 둘이 있다. 하나는 지하 매설물의 관리 부재다. 요즘 많이 줄었지만 어지럽게 묻힌 수도관, 배수관 같은 매설물이 곧잘 파열 사고를 낸다. 무계획이 부실을 낳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봇대다. 350만 명이 사는 거대도시 부산의 도롯가는 아직도 전봇대가 점령하고 있다. 보기 흉하고 관리도 신경쓰인다. 대형 지하통로를 만들어 지하 매설물과 함께 관리하면 보기에 좋고 관리에 편하다. 그만큼 사고의 여지도 대폭 줄어든다.
지하수와 지질에 대한 조사도 영 미덥잖다. 요즘 자주 발생하는 땅꺼짐 현상, 싱크홀이라는 것은 이에서 연유한다. 마구잡이 지하수 개발은 결국 지반 붕괴를 가져온다. 땅속 토질을 모르고 공사를 하다가 사고가 유발되기도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붕괴 사고는 이것만 보완해도 확 줄어든다.
이번에 부산을 강타한 여름철 수해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기습적인 폭우는 금정산, 백양산 등 산지 주변에 피해를 집중시켰다. 산의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낡은 저수지 둑이 무너진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다.
한데, 예외가 있었다. 수영구 쪽 황령산 주변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연유를 알아본즉, 집중호우 전에 구청에서 계곡을 깨끗하게 정비했다는 것이다. 큰 돌로 계곡 폭을 넓히고 계단식으로 물 흐름을 느리게 만든 게 대단한 효과를 냈다. 비만 오면 하수구가 막혀 범벅이 됐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반면 회동저수지는 떠내려온 쓰레기로 뒤범벅이 됐다. 식수원이 쓰레기로 오염돼서야…. 이런 망신이 없다. 홍수 때 쓰레기가 대마도로 흘러가 국제 망신을 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계곡과 하천에 쓰레기 방지시설만 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미 한라산이나 강원도 등지에는 이런 시설이 일부 돼 있다.
발 밑이 불안하고 비만 오면 걱정이라면 온전한 사회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대충대충 하는 한 나라의 질적 발전은 없다. 땅속, 산속, 바닷속, 강속을 가지런히 하면 어떤 재해도 범접하지 못 한다. 준비가 철저하면 위기는 오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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