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월 '농어촌지붕개량촉진법'이 시행됐다. 지붕 개량하는데 법까지 필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거국적 사업. 내용은 전국의 농어촌 가옥 중 91만2500여 호를 대상으로 초가 지붕을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꾸는 것이다. 가구당 1만65원을 1년 거치 3년 상환에 연리 8%로 빌려줬다. 대상이 된 초가집이 서울에 1만65호, 부산에 3780호가 있었다니 격세지감이다.

초가는 가난의 상징이다. 기와집은 아흔아홉 칸인 데 반해 초가는 세 칸이 고작이다. 흥부가 박을 타자 나온 시녀는 흥부의 초가를 고대광실 기와집으로 바꿔준다.

초가집 천시는 역사가 오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도성 서라벌에는 17만8936호의 기와집에서 숯불로 밥을 지었으며, 기와집이 겹겹이 늘어서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고 전한다. 헌강왕 때는 왕이 월상루(月上樓)에서 내려다 보니 초가가 한 채도 없었다고 한다. 도성에는 초가가 들어설 수 없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초가를 몰아낸 것이 슬레이트다. 새마을운동 일환이다. 그렇게 시작된 슬레이트 지붕은 1970, 80년대를 살아온 농어촌 주민과 도시 소시민에게는 친숙한 풍경이 됐다. 장마철이면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던 빗소리가 요란했다. 비가 그치면 새는 곳을 찾아 새 슬레이트로 갈아끼우기 바빴고. 겨울이면 슬레이트 지붕 끝에 고드름이 열렸다.

슬레이트 지붕도 자신이 쫓아낸 초가와 같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죄목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 함유. 무시무시하다. 초가를 슬레이트로 바꾼 것이 '개량'이 아니라 '개악'이었던 셈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슬레이트 지붕 교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오늘부터 슬레이트집이 밀집한 남구 문현동 돌산길 일대,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 일대 1600세대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조사가 실시된다. 이런 조사는 올해 상반기 경북 경주, 영천, 전남 구례 등에서 이미 실시됐다.

사실 슬레이트 지붕은 어정쩡하다. 초가의 정(情)도, 빌딩의 힘도 없다. 시골도 농촌도, 과거도 현재도 아니다. 자신의 본성인 회색 만큼이나 정체성이 불확실하다. 석면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밀려나게 될 운명이다.

우리네 풍경에서 사라지는 것이 슬레이트 지붕뿐일까. 지붕 위의 파란 물통, 노란 물통의 생명력은 언제까지 일까. 21세기 OECD 선진국 대한민국의 집들이 하나같이 머리에 물통을 이고 있는 것도 슬레이트 지붕만큼이나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