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향심에 호소하라."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잘 써먹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최근 부산에서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향토기업 제품 애용 운동'이 대표적이다. 얼핏 보면 감성적인 마케팅 같지만 치밀한 경제적인 노림수가 있다. 자본에도 국적이 있고 지역이 있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 향토기업이 생산을 늘리고 재투자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자치단체가 벌어들이는 법인세가 증가하는 등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국민들은 1970, 80년대 국산품 애용 운동이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데 한몫한 것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그런데 시민 입장에서 보면 외지 기업이라고 무턱대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기술이 뛰어나 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본의 속성은 이윤추구가 아닌가. 향토기업도 천사가 아닌 만큼 도덕적이고 공익적인 투자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게다가 시민들은 배타적인 향토기업 사랑이 경쟁력 약화나 비도덕적 경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애향심 마케팅도 효력을 가지려면 소비자에게 줄 '떡'이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부산은행의 경남은행 인수 후폭풍'과 '대선주조 대 무학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소주 전쟁'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오고 간다.

소주 전쟁부터 보자. 무학은 본사와 공장이 창원에 있는 회사지만 부산 소주시장을 7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한때 부산시장을 90% 넘게 장악하던 대선주조는 본사와 공장이 있는 안방을 고스란히 내줄 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무학에 대한 부산시민의 반감이 거의 없으니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반격에 나선 대선주조의 최대 무기는 역시 애향심 마케팅이다. 최근의 향토기업 제품 애용 운동이 전형적인 예다. 무학의 수성 전략도 비슷하다. 무학 측은 "향토기업으로 봐 달라"고 호소한다. 애향심 마케팅으로 맞불을 놓아 대선주조의 반격을 최대한 희석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만큼 향토기업의 애향심 마케팅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대선주조가 지금과 같은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은 경영상의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대선주조는 부산시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하지만 부산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비엔(BN)그룹이 인수하기 전 사주가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팔아넘기는 바람에 '먹튀 논란'이 일면서 시민의 외면을 받았다. 대선주조가 상처 입은 시민의 감정을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회생 기회는 있다고 본다.

무학은 이런 점을 경계하는지 모른다. 더욱이 부산시민을 판촉요원으로 고용하고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과 같은 무학의 지역공헌 활동으로 시민에게 향토기업의 애착을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무학이 부산 발전에 도움된다고 시민이 느낄 만한 마케팅이 더 필요한 것이다. 소비심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문제는 반대의 양상이다. BS금융지주는 경남은행 인수를 확정했고 오는 10월 그 절차가 마무리된다. BS금융지주는 경남도민의 반발을 고려해 경남은행 인수 후 ▷현행 투뱅크 체제 유지 등 독립적인 자율경영권 보장 ▷신규 인력 채용 시 경남·울산지역 대학생 90% 이상 유지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도 경남도의 반감은 완전 해소되지 않는 듯하다. 한발 더 나아가 경남도는 경남은행과 맺은 제2금고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앞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경남은행 지역환원 운동 과정에서 경남도 인수추진위원회가 아닌 다른 금융기관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경남은행과 제2금고 약정을 해지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었다. 더는 경남은행을 향토기업으로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남은행의 본사가 창원에 있고 옮기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경남도의 이런 처사에는 경남을 대표하는 지방은행이 경남에서 분가한 부산의 기업에 인수된 데 대한 감정이 작용한 듯하다. 경남은행 역시 이런 감성을 다독이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애향심이란 향토기업의 최대 무기를 잃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애향심 마케팅은 감성에만 호소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실익이 있다고 소비자가 느껴야 성공한다. 부산 경남을 대표하는 향토기업들이 지역사회에 더욱 많은 기여를 해 동반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