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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그래도 선거는 희망이고 축제다 /박무성

원전사고 이후 日처럼 부산서 변화조짐 보여

'세월호각성' 후 첫 선거…개인과 공동체 연대로 사회 바꾸는 축제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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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밑 일본 아사히신문은 국민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여론조사를 벌였다. 그해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 열도 전체가 심각한 혼돈과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국가적 기강을 다잡고 어떤 돌파구라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시기였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의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지진 참사 이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는 응답자는 71%에 달했다. 반원전 시위 같은 집단행동이 정치를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 비율도 44%나 됐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을 정치가에 맡기면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고작 3%였다.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갈망은 최고조에 달한 반면, 국가 관리시스템인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일본의 고민과 갈등은 여기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0여 일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들을 생각을 살핀다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세월호 사건을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와 평면 비교하는 것은 물론 무리다. 하지만 생때 같은 고교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봐야 했던 참혹성과 이로 인한 상처, 절망과 무력감은 세월호 참사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사고의 근본원인이 탐욕적인 자본주의와 효율을 앞세운 비인간적인 욕망, 공동체의 붕괴와 책임감 상실에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부의 재난 대응시스템은 한국과 일본이 놀라울 만치 흡사하다.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해가 바뀌면서 일본에서는 반원전 시위가 본격 전개됐다. 2012년 6월에는 도쿄 총리 관저 앞에 2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집결할 정도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거셌다. 당시 국민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부가 국민들을 무시하고, 기득권 세력끼리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행태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것. 요컨대 우리 손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이자 욕구였다. 역사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사회를 바꾸려면'에서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풀어내고 있다. 고민은 더 깊어졌다. 과연 세상은 바뀌는 것인지,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미미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6·4지방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의 비통한 분위기가 선거를 덮고 있다. 여느 선거처럼 떠들썩한 유세도, 진종일 흘러나오던 로고송도 들리지 않는다. 조용한 선거를 넘어 '침묵의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부산지역의 경우 예전에 볼 수 없던 심상찮은 변화의 조짐들이 감지된다. 우선 시장선거에서는 여당의 깃발만 꽂으면 따놓은 당상처럼 당선이 보장되던 '텃밭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또 교육감 선거에선 진보 성향의 후보와 보수 후보들이 예측불허의 진검승부를 겨루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30대에서 50대 초반의 화난 엄마들, 이른바 '앵그리맘'의 의식변화도 읽힌다. '내 자식' 나 혼자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 우리 사회 모두가 지켜야 한다는 공동체적 각성은 반갑고 고무적이다.

각급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구호가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은 이 상투적인 구호를 의문문으로 되묻는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고 진지해졌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겠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보다는 나의 투표 행위가 나를 바꿀 수는 있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를 지켜보는 관심도가 달라지고, 지지 혹은 비판적 발언에 참여하게 되고, 나아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오구마 에이지 교수는 선거제도에 의한 사회변화에 대해 극히 비관적이었다. 투표를 통해 대표가 선출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어차피 유력자나 대규모 조직을 등에 업은 후보가 승리하게 마련이라고 봤다. 선거를 통해 사회를 바꾸기란 애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시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장자크 루소의 고전적인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건 시민 각자가 이뤄내는 자발적인 변화와 개개인의 힘을 시너지화하는 연대의 위력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결정적 계기가 있으면 그 힘은 폭발력을 갖게 된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름하는 분기점이 돼야 마땅하다. 몰가치에서 기본과 원칙으로, 비인간적 욕망에서 공동체의 의리로, 안전불감증에서 생명중심으로 생각의 중심추를 옮겨놓아야 한다. 비통한 마음에도 이번 선거가 희망이고 축제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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