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시야가 20㎝밖에 되지 않아 작업하기 어렵다 한다. 시야가 짧은 것은 바닷속만이 아니다. 여객선 세월호 참사가 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도 사고 가능성에 대한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직후에 보여준 선원들의 행동도 시야가 전혀 없었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범정부적인 총력 동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처 능력 또한 시야 확보가 극히 부족하다.

우리도 몰랐던, 아니 우리가 착각하고 있던 우리의 모습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동안 좀 발전한 줄 알았더니, 하나부터 열까지 요지부동의 허술한 모습을 안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소의 선박운행관리부터 정부의 시스템 부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그대로 맨몸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고위공직자들의 '미개'한 본심까지도 부지불식간에 마구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웃 나라에서도 경멸 섞인 걱정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층이라는 사람의 가족까지 나서서 국민의 미개함을 질타하는 모습에서는 소위 이 나라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는 국민들을 경멸하면서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시스템적인 부실함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좁고 짧은 우리의 시야는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을 전혀 살피지 못하고 있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 이름을 두 번이나 엉터리로 가르쳐주어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인 줄 알고 확인하게 만드는 것은 그 숱한 사례의 극히 한 단편일 뿐이다. 사복경호원을 수십 명씩 대동해 다니면서 위세를 부리거나, 기념사진을 찍으려 한다거나, 가족들의 아픔을 뒤로 하고 라면 먹기에 골몰하는 모습 등은 차라리 해프닝 정도라고 치더라도, 가족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들을 위해 이모저모를 살펴서 고통과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사람에 대한 정성과 예의가 가장 기본이다. 그것의 최소한조차 확보되지 못하는 데서 수중 시야 확보의 어려움보다 훨씬 더 큰 절망을 느낀다. 가족들의 아픔은 곧 국민들의 아픔으로 번져 나온다.

과거를 돌이켜 보건대, 우리는 아픈 사건들을 교훈으로 살려 보다 성숙해가지 못하고, 일회성 해프닝으로 증발시켜 왔음이 이번 사건으로 아주 명백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도 짧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기억의 뻘 속으로 숨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 더 성숙된 나라로 키워갈 것인가.

모든 시스템의 성숙은 인간을 귀하게 여기고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며, 서로를 살피고 돌볼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가능한 일이다. 이 시대 지도층들이 저토록 '미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가 경쟁과 성장, 출세에 매진하느라 인간에 대한 탐구,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고려, 서로를 위한 배려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남을 이겨 나를 성공시키는 비법들을 전수하느라 분주하다. 이른바 일류 학교일수록 이런 행태는 더하다. 하지만 이길 것은 남이 아니라 나이다. 나를 이겨서 남을 이해하고 살피고 돕는 마음이 더 고귀하다.

오늘도 정부의 각 부처는 서로가 주도하려 하고, 서로가 공을 세우려 하는 경쟁 분위기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다. 경쟁 중심의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이제라도 서로가 협력해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익히고 터득하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 이 사태가 외형적으로 수습이 완료된다 하더라도 마음 속 깊이 엄청난 상처를 안고 휘청거리며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에 대한 살핌과 도움이 우리 사회를 따스하고 평안하게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제 시야를 좀 멀리 확보하도록 노력해 보자. 시야를 조금만 넓힌다면 이러한 사건은 이미 수없이 예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남권의 원자력발전소는 엄청난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그 위험은 원자력발전소를 운행하는 전문가나 납품하는 기업의 부도덕성에만 있지 않다. 시민과 정치인들도 시야가 말할 수 없이 좁고 짧다. 원자력비상계획구역을 반경 10㎞에서 30㎞로 넓히자고 하니까 관광이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이를 저지하려는 지자체들은 그야말로 시야가 20㎝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위험을 외면한 채 시민 합의의 절차도 생략한 대규모 공연장 건설에나 골몰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근시안을 타파하고 넓고 먼 시야를 확보하려면 이제부터라도 남을 이겨 나를 출세시키는 교육부터 바꾸어야겠다.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