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에 입원한 중년 남성이 정신적 요인이 원인으로 밝혀져 정신건강의학과에 자문이 의뢰되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말투로 "왜 나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하는 거예요" 라며 따졌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 대화이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환자들 중에도 "정신과 약을 먹으면 멍청해지고 바보가 된다던데요" "정신과 약은 한 번 복용하기 시작하면 절대 끊을 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정신과' 하면 '정신이상'을 연상시키는 선입견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이란 무엇인가. '일하고, 사랑하고, 놀 수 있는 능력'이라고 프로이트는 정의했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신체적으로 튼튼하더라도 적절한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정서적 친밀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회활동을 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정신질환이 될 수 있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국민들의 정신질환 인식도에 관한 조사를 벌였다. 전체 응답자의 20%는 우울증을, 16%는 치매를 정신질환으로 보는 반응을 나타냈고, 그밖에 정신분열병, 사이코패스, 지능미달, 성폭행, 범죄자라고 응답한 경우들도 있었다. 답변 내용을 비춰볼 때 정신질환하면 부정적 사고와 쉽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정신질환 중 일부 특정 질환만을 정신질환으로 인식하면 오류와 편견에 빠지게 된다. 비유하자면 다양한 종류의 피부 관련 질환이 있지만, 무좀이나 습진만 꼬집어서 피부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질환에 대한 한국인들의 색안경 도수는 매우 높다. 관계 당국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여러 번 공청회를 거쳐 '정신과'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또 매년 공익박람회 성격의 홍보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도 지난 4월 4, 5일 벡스코에서 정신건강박람회가 열렸는데, 정신과의사들을 비롯하여 정신보건 담당자들이 전시, 상담, 체험, 강연을 통하여 정신질환에 관한 주요 내용들을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법적 개선책도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시행되던 정신보건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명칭이 정신건강증진법으로 바뀌었다. 종전에는 정신병원과 요양시설관리, 중증 정신질환자와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뤘지만 개정안은 전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 정신질환자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현행법은 질병의 심한 정도와 관계없이 정신질환을 가진 모든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정신질환자는 '망상·환각·사고·기분장애 등으로 독립적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외래치료를 받는 가벼운 정신장애는 정신질환자에 포함되지 않게 된다.

현재 정신질환자와 관련하여 잘못된 관행 중 한 가지가 보험가입 문제이다. 정신과 진료의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암보험 등 보험가입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심지어 단순히 상담만 했는데도 보험가입을 거부당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에게서 암 발병률이 높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에 신의진 국회의원 등은 지난 2월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수면장애나 우울증 등 경증의 정신과 치료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조치이다. 또 실손보험 혜택도 따를 전망이다. 그동안 정신질환자들은 실손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국민권익위원회가 정신질환자들에게도 확대보장할 것을 권고함에 따라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한국사회, 전체 인구의 27.6%에서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빨리빨리'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도한 경쟁심을 부추기면서 구성원 모두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무엇을 하든 승자가 되고자 하는 일등 지상주의에 빠져서 일등이 아니면 낙오자 내지 루저로 취급받는 풍토도 깔려 있다. 이러한 사회환경적 배경이 정신적인 문제를 양산해내는 토양이 되고 있다. TV나 신문을 보면 건강에 관한 기사가 가히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제라도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재정립되어야 하겠다. 신체만 튼튼하고 정신이 부실하다면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