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도 벌써 십년이 다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루함을 참아주지 않는 학생들을 상대로 나는 늘 그들의 관심을 내 강의에 붙들어 두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왔던 것 같다. 선생의 체통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나는 다만 내 공부의 어떤 소출들을 그들의 마음에 아로새기는 데 열을 올렸을 뿐이다. 질문을 제기하여 생각하도록 이끌기보다는, 알량한 지식들을 정리해주고 답안을 쓸 수 있도록 도왔을 따름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것은 지루한 사유의 과정 속에서 자기를 고문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규격화된 학제의 따분한 틀 속에서, 다만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지루함의 인내치를 넘지 않으려 고뇌하였을 뿐이다. 세상의 좋은 가르침은 모두 그 지루함을 견디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그러나 나는 고백하건대 그들을 지루하게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빨리 빨리'라는 서두름의 문화는 이 땅에서 이미 오랜 내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진득이 기다려서 뜻을 이루는 인고의 성취란 우리에게는 그 얼마나 낯선 미덕인가.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잠깐 주위를 둘러보니, 그 짧은 시간의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건널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약속 장소에서, 우리는 그 짧은 지루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문명의 이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유명한 비평서에다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우리는 중단, 막간, 막간의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강렬한 자극들에 노출된 현대의 삶은 '막간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강렬한 자극 속에서 자기를 소진시키고 끝내 탈진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착취하는 '피로사회'의 단면이다. 그런 사회는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심심한 막간의 시간은 다른 강렬한 자극들로 대체되어야 불모의 시간이 아니다. 사람은 심심한 가운데서 사색하게 되고, 그 사색과 더불어 창의적인 발상들을 붙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심한 막간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회는 창조적으로 무능한 사회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사람들. 휴대전화와 컴퓨터, 그리고 텔레비전의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 이처럼 현대의 삶은 너무 많이 듣고 보아서 오히려 귀먹고 눈멀었다. 사람들은 전자기기를 통해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대체로 그것은 그 전기의 자극으로 지루한 무위의 시간을 추방하고 있을 따름이다. 때로 전자기기의 가상적인 네트워크는 몸으로 부대끼는 이웃한 만남들을 대신함으로써 진정한 공통의 연대를 가로막는다. 또 그 기기들의 언로를 통해 엇비슷한 것들을 보고 들으며 세상의 물정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자기에 대해서는 돌아볼 여유가 없으며 가족과 이웃의 사정들은 관심 밖이다. 그렇게 다른 많은 것들의 자극들로 심심함을 타파하고 있는 동안, 소외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또 주변의 가족과 이웃들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따위에 못지않게 '소비'는 지루한 막간의 시간을 타개하는 또 다른 강렬한 자극이다. 휴일의 백화점과 아울렛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려는 이들로 언제나 북새통이다. 값비싼 아웃도어로 치장을 하고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나가보지만 심심하고 외로운 우리들의 마음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비를 통해 누리는 잠깐 동안의 즐거움은, 사실은 판매로 매상을 올리는 자들의 더 큰 즐거움에 기여할 때가 대부분이다. 지루한 막간의 시간에서 쉬지 못하는 우리는 고독과 함께 또 다른 자극들의 이끌림 속에서 끝내는 탈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저 소비적인 자극들로부터 고독하고 심심한 막간의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다.

나도 이제는 진정으로 지루한 강의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 학생들과 함께 읽고 싶은 어떤 편지 구절이 떠오른다. 지루한 막간의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는 바로 그 구절. 이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피로한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