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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29세 청년 /강동수

고모부 처형하고 스스로 '태양'이 된 김정은의 수령놀이

진보도, 보수도 패러다임 다시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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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일엔 눈도 꿈쩍하지 않게 된 우리네지만 북한의 '장성택 숙청과 처형'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런저런 분석과 논평을 했다. 기자로 말하자면, 처형 다음 날 마식령스키장을 '현지지도'한 김정은의 웃음이 가장 소름끼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버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선 살집 좋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29세 청년'의 모습에 북한의 오늘이 압축돼 있지 않았던가.

장성택의 죽음을 애달파할 이유는 없다. 그 역시 왜곡된 북한체제에 기생했던 '소두령'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를 잔인하게 살해한 '막장 드라마'는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아, 이 정도였던가'하는 새삼스러운 탄식을 감추기 어려웠다는 거다. '김정일 2주기' 행사에서 기립한 수천 명의 군중이 미친듯 박수치는 가운데 팔을 털레털레 흔들며 입장한 김정은은 영락없는 사이비 교주였다. 아흔 살에 가까운 명목상 국가수반 김영남에서부터 당·군·정의 실세들이 얼어붙은 듯 정자세를 취하고 다투어 충성 맹세를 바치는 장면은 21세기의 '블랙 코미디'가 아니었던가.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풍경을 연출하지는 않는다. 후세인이나 카다피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고모부를 죽이고, 온 나라를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고, 삼라만상을 차렷자세로 세운 '29세의 청년'이라니. 회의장 정중앙에 삐딱하니 앉아 그 모든 장면을 무감동하게 지켜본 그 청년의 흉중에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우리의 스물아홉이라면, 취업을 걱정하거나 직장의 말단으로 이런저런 궂은 일을 하는 나이다. 연인을 만나 가정을 꾸릴 때다. 열정과 정의감, 순수함을 잃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물아홉 살짜리 수령'이라니. 정말로 그 청년이 '불세출의 영웅'이란 말인가. 도무지 인간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잘 만난 것 말고 그가 보여준 건 무엇일까. 스물아홉 청년을 수령 삼아 일사불란을 강요하는 북한 체제는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하다. 글쎄, 나이 타령을 하는 기자가 순진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이 저 모양 저 꼴이 된 건 '수령 숭배'와 '3대 세습' 때문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디 중국이 세습을 하던가. 쿠바와 베트남에 '백두혈통'이 있던가.

이번 사태를 목도하면서 진보진영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 있을 게다. 장성택의 몰락은 북한이 개방을 통한 자력갱생의 문을 스스로 걸어닫았다는 걸 의미한다. 진보진영은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려면 북한과 교류해야 한다, 그러려면 북에 대한 비판은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사실이다. 기자도 물론 남북 간의 교류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도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최소한의 시스템을 유지할 때 이야기다. '내재적 관점'이 통할 단계가 지났다는 거다. 대화할 땐 하더라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3대 세습은 악이다, 제 백성을 난민으로 쫓아내는 체제는 악이다, 국제적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은 악이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던 1980년대 주사파가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논리로 보수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지구상 최악의 체제라고 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해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세습과 권력 집중이란 측면에서 따지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도 유례가 없다는 재벌 시스템은 북한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그걸 완화시키자는 게 경제민주화 아닌가. 북한을 더 떳떳이 비판하려면 한국사회의 경제력 편중과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완화돼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할 터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경계해야 할 거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깨트린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할 거다. "안녕들하십니까?"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울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거다.

스무 살의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쳐 죽였다가 사형을 선고받았다. 스물넷의 윤봉길은 상하이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을 죽였다. 스물둘의 전태일은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삶을 달라며 제 몸을 불살랐다. 그런데, 스물아홉 북한의 젊은이는 고모부를 죽였다. 그리고 제 스스로 '태양'이 되었다. '장성택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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