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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괴물들 /이성희

끔찍한 우리 사회 장자 속 괴물 닮아, 피해자면서 가해자…우리 손에 달려있어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2-05 20:24:31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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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를 읽어보셨습니까? '장자'는 인생의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고전이지만 그것뿐이라면 그저 어깨에 힘만 주는 근엄한 꼰대처럼 무척이나 재미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좀 독특합니다. '장자'를 펴는 순간, 우리는 도저한 사상보다는 오히려 경이로운 판타지를 먼저 체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판타지들 가운데 중요한 모티브를 이루고 있는 것이 괴물(畸人)입니다. '장자' 속에는 기이한 괴물들이 칙칙하고 불쾌한 무의식의 그림자처럼 도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그 괴물 군상들은 퍼레이드를 펼치듯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군요.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쪽 발이 잘린 자들, 경악스러운 몰골의 꼽추, 신비로운 광인, 천하를 놀라게 할 정도로 못생긴 남자, 하늘로 날아오르는 물고기, 산처럼 거대하지만 기괴하게 비틀려 있는 나무들 등등.

장자, 이 위대한 철학적 우화 작가는 왜 이런 불유쾌한 등장인물들을 마구마구 창조해 냈을까요? 게다가 이 괴물들은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며, 장자 자신의 대변자들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둔한 후생이 짐작건대, 그것은 치밀하게 의도된 이야기 전략임이 분명합니다. 흉측한 괴물들은 일단 우리의 일상적 의식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의식 전환의 한 계기를 마련하게 합니다. 이윽고 사회에서 조롱받고 기피되던 흉한 존재가 실은 아름다운 자연의 도를 체득한 자임이 드러나게 될 때, 사태는 순식간에 역전되어서 실상은 그 괴물들이 아름다운 자이고 그들의 비정상을 조롱하던 우리들이 추한 괴물이 되는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들이 습관처럼 정상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문득 정상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지요. 그리하여 장자의 괴물은 그 당시의 사회(전국시대)가 지독한 괴물들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자'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 사회야말로 장자의 괴물 앞에서 정체가 폭로되어야 할 끔찍한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우리 삶을 포위하여 흰자위 번득이며 활개를 치고 있는 온갖 사기꾼, 강도, 치한들 그리고 아이를 죽이는 어미의 충격적인 소식을 어찌 해야 합니까?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란 대단하지만 그것이 숫자일 뿐이라면 무어 그리 대단합니까? 대학 입학이 곧 채무자로서의 고단한 여로의 시작이 되는 사회, 수많은 생명체와 시민의 공포를 담보로 터빈을 돌리고 있는 핵발전소, 극심한 빈부 격차, 자살이 일상화된 사회는 괴물입니다. 경제의 수치가 높아질수록 더욱 무서운 괴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괴물의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덧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자유롭고 아름다워야 할 아이들의 꿈을 입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사회 지도층들의 추잡한 비리에 대해 '뭐 다 그런 거지. 다른 놈은 별 수 있나'하고 넘길 때, 그리하여 그것이 일상처럼 여겨질 때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에 콘크리트를 퍼붓고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배를 뒤집고 떠올라도 '뭐 그럴 수도 있지' 할 때 우리는 분명 괴물입니다. 그래서 충격적인 민간인 사찰, 정치검찰, 저 잔혹한 고문실 '남영동'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장자가 창조한 '천하를 놀라게 하는 추남' 애태타는 실상 전혀 괴물이 아닙니다. 괴물이기는커녕 '모든 타자와의 관계에서 생명의 봄을 이루는(與物爲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노자는 '크게 이룬 것은 결여된 것 같고(大成若缺)', '위대한 기교는 졸렬한 것 같다(大巧若拙)'고 하였습니다. 이 '결여'와 '졸렬'을 체현한 것이 '바보'입니다. 노자는 자신의 마음을 '바보의 마음(愚人之心)'이라 하였습니다. 장자의 괴물들은 노자가 말하는 바보의 변형 버전들입니다. 우리 곁을 스쳐갔던, 우리가 마치 괴물인 양 두려워하면서도 조롱했던 한 바보가 문득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삶과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삶을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진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길로 들어설 것인지, 생명의 봄을 이루는 길로 향할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비록 미미해 보일지라도 모든 것은 우리 손에서 시작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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