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은교'에서 떠올린 욕망과 환상의 역학 /주유신

처절한 비극을 예견하면서도 집착 빠져드는 이유, 어쩌면 숙명인지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5-09 20:04:09
  •  |  본지 27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은교'는 절절히 가슴 아프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가슴 아픈 이유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자기파괴적인 욕망 때문이고, 아름다운 이유는 가질 수 없는 그 대상이 내보이는 치명적 매혹 때문이다.

'국민시인' 이적요(박해일 분),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그리고 이들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17세 소녀 은교(김고은 분). '촐라체', '고산자'와 더불어 박범신 작가의 '갈망 3부작'으로 불리는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이 영화는 이 세 사람 간의 엇갈리고 비극적인 욕망의 역학을 찬란한 영상으로 빚어낸다.

주름지고 늘어진 노인의 몸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충격적인 오프닝 신은 고고한 정신력과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육체성과 고립된 일상 속에 유폐돼버린 영혼을 상징적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본격 문학의 외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던, 그래서 제자 이름으로 출판한 통속소설을 통해 대리 표출했던 노시인의 숨겨진 욕망과 죽지 않은 열정은 은교를 만나면서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이는 그의 평생의 걸작, 단편소설 '은교'를 탄생시킨다.

스승이 마치 머슴에게 주는 새경처럼 던져준 소설 한 편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서지우는 자신의 비진실에 괴로워하며 스승의 천재적 재능에 대한 질투와 욕망을 거두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탐욕의 존재다. 우연히 미출간 원고 '은교'를 읽게 된 그는 압도적인 예술적 성취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결국 이를 훔쳐 자기 이름으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은교는? 영화 속에서 그녀는 두 남성에게 이상화된 젊음이자 대상화된 여체이고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다. 얼핏 그녀의 위상이 추상적이고 역할이 기능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생생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자 절대 영토화되지 않는 탈주적 욕망의 주체이다.

그런 점에서 이적요에게 '로리타 콤플렉스'를 적용하는 것은 경박해 보이고, 서지우에게 표절 내지는 대필과 관련된 윤리를 들이대는 것 역시 본질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은교를 정점으로 한 삼각구도의 본질은 정신분석학이 역설한 바 있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그러나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대상 그리고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엄폐하는 환상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베니스에서의 죽음'(루키노 비스콘티, 1971)과 '순응자'(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70)이다.

평생 게이 정체성을 숨긴 채 독신으로 삶을 마친 비스콘티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공산주의자였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리얼리즘 감독이자 완벽한 탐미주의자였다. 그의 후기작으로 데카당스 미학의 절정을 보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병에 걸린 노작곡가가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니스에 도착해 해군복을 입은 미소년에게 생애 최후의 사랑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썩어가는 세상 그리고 죽어가는 육체와 대조되는 소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비스콘티는 장엄하면서도 통절한 바로크적 스타일로 표현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로 유명한 베르톨루치는 혁명과 섹슈얼리티 간의 긴장 관계 그리고 우리 내부의 파시즘을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해온 감독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을 각색한 '순응자'는 어린 시절 동성애와 살인 등과 연관된 외상으로 인해 강박적으로 파시즘을 받아들인 주인공이 반파시즘 운동가인 과거의 스승을 암살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어떤 자기 확신도 결여한 채 살인을 도모하는 주인공의 불안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상상 속을 오가는 혼란을 베르톨루치는 우아한 미장센과 유영하는 듯한 카메라로 담아낸다.
두 영화가 각각 형상화하는 주제는 '페도필리아(pedophilia)'적인 고착을 통한 감각적 죽음에 대한 저항 그리고 '부친살해'를 통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기 초극이다. 인간이 처절한 비극을 예견하면서도 강박적 집착과 피학증적 쾌락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어쩌면 그저 숙명인 건지도 모르겠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RSS

  1. 1초유의 교사 17명 성폭력 의혹 수사…경찰도 학교도 ‘멘붕’
  2. 2근교산&그너머 <1117> 일본 미야기올레 오쿠마쓰시마 코스
  3. 3연말 문 연다던 수영경찰서 첫삽도 못 떠
  4. 4 ‘버닝썬 게이트’ 후폭풍…기획사들 소속 연예인 단속령
  5. 5서병수,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에 쓴소리
  6. 6라돈검출 자재 전면 교체 약속해놓고 미적미적
  7. 7패스트트랙 열쇠 쥔 바른미래당 내홍 격화…분당설 고조
  8. 8[조황] 목포 도다리 낚시 호황에 꾼들 싱글벙글
  9. 9일본 고찰 노송숲 절경…해산물 넘쳐나 ‘에도의 부엌’ 불려
  10. 10화재 때 완강기 사용법 배워요
  1. 1홍문종 “박근혜 탄핵될 이유 없었다… 자유한국당이 관심 가져야”
  2. 2기장군 조기 총선 분위기 후끈…군수 사퇴설·자전거 투어·정책 콘서트
  3. 3민방위훈련, 오늘(20일) 오후 2시부터 전국 화재 대피 훈련
  4. 4말레이서 인니어로 인사한 문 대통령 외교 결례 논란에 靑 "청와대 내에는 전문가가 없어서..."
  5. 5하단1동, 「주민자치위원 역량강화 특강」개최
  6. 6김해시의원, 도심 주차난 해소 대책 제시
  7. 7서병수,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에 쓴소리
  8. 8패스트트랙 열쇠 쥔 바른미래당 내홍 격화…분당설 고조
  9. 9헌법재판관 후보에 문형배·이미선…부산 법조계 ‘겹경사’
  10. 102035년까지 화물차 → 수소차 교체
  1. 1옛 보림극장 자리에 아파트 건립
  2. 2전국 스타트업 모여 ‘부산 미래 먹거리’ 찾는다
  3. 3롯데면세점, 부산 청년 관광기업 육성 5억 기부
  4. 4결혼 점점 안 하는 부산
  5. 5김치 담그는 마트, 안경 만드는 백화점…PB시장의 진화
  6. 6홈플러스서 영국 신상품 와인 5종 1만~3만 원대
  7. 7‘여름면’ 전쟁 벌써 뜨겁다
  8. 8금융·증시 동향
  9. 9주가지수- 2019년 3월 20일
  10. 10맹견에 물려 사망땐 주인 최고 징역 3년
  1. 1왕종명, 실명 요구 논란에.. 이상호 기자 “자신이 취재해서 밝힐 일” 비판
  2. 2지팡이 짚고 시위, 나이 87세 백기완 누구? 원래 꿈은 축구선수, 1987·1992 대선 출마
  3. 3기각 뜻과 기준은? … 이문호 구속영장 기각 “수사 태도·피의 사실 다툼 여지”
  4. 420일 전국날씨… 미세먼지 ‘나쁨’ 오후 들어 전국에 비소식
  5. 5버닝썬 애나 “손님들이 마약 가져와 했다”…정밀검사 결과는 엑스터시·케타민
  6. 6황혼이혼 급증, 20년 이상 살고 이혼하는 비율 33.4% 가장 높아
  7. 7영남·충청 모텔 투숙객 1600여 명 '몰카' 찍혔다…인터넷에 생중계
  8. 8'손혜원 부친 유공자 선정 의혹' 국가보훈처 압수수색
  9. 9“포항지진, 자연발생 아닌 지열발전에 의한 것” 해외조사위원회 발표
  10. 10차 사고로 다친 동승자 놔둔 채 사라진 20대, 음주운전 의심
  1. 1임은수 종아리 미국 머라이어 벨에게 가격 당했나
  2. 2손흥민 17억대 라페라리소유, 네티즌 반응 엇갈려
  3. 3전준우 결승타...롯데 시범경기 최종전 4-3 승
  4. 4다저스 개막전 선발은 힐과 류현진 '2파전' 양상
  5. 5아이파크, 헝가리 공격수 노보트니 영입
  6. 6롯데자이언츠 26일부터 '배지데이' 이벤트
  7. 7프로야구 3강 구도…롯데 통쾌한 반란 꿈꾼다
  8. 8대타 전준우 결승타, 사자 추격 뿌리치다
  9. 9다저스 개막전 선발, 힐·류현진 ‘2파전’ 양상
  10. 10아이파크, 헝가리 공격수 노보트니 영입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삼일정신을 다시 바라보다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기고 [전체보기]
기후변화 대응 그리고 미래 /김종석
부산, 글로벌 금융도시 향한 담대한 도전 /유재수
기자수첩 [전체보기]
돌아오지 않는 유커 /민경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배지열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반려동물’ 수난 시대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말모이와 국악
국악 선입견과 마주하기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르노삼성 사태에 뒷짐 진 정부 /이석주
‘시민명령 1호’의 민낯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인구 교체
닥터 헬기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자기 표현의 기술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읽으며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일본 가와시마두부점의 소쿠리두부
베트남 향수 달랜 ‘느억맘 김치찌개’
사설 [전체보기]
지열발전 연관 드러난 포항 지진, 후속조치 만전을
석연찮은 오페라하우스 기부채납 바로잡아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다 중한 건 없다
생계급여 수급 노인과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황제의 이중 초상
기절을 부르는 비너스
이홍 칼럼 [전체보기]
먹방,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
개념도 정리 안 된 ‘4차 산업혁명’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네 탓 싸움에 더 숨막히는 미세먼지
삐걱거리는 부울경 상생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연둣빛 봄날에
봄이 오는 길목에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스파클링와인, 우연히 만들어진 명품
최고의 와인은 내 곁에 있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아름다운 기증 ‘불이선란’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 2019 다이아모든브리지 걷기축제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19부산하프마라톤대회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유콘서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