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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은교'에서 떠올린 욕망과 환상의 역학 /주유신

처절한 비극을 예견하면서도 집착 빠져드는 이유, 어쩌면 숙명인지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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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5-09 20:04:0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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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는 절절히 가슴 아프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가슴 아픈 이유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자기파괴적인 욕망 때문이고, 아름다운 이유는 가질 수 없는 그 대상이 내보이는 치명적 매혹 때문이다.

'국민시인' 이적요(박해일 분),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그리고 이들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17세 소녀 은교(김고은 분). '촐라체', '고산자'와 더불어 박범신 작가의 '갈망 3부작'으로 불리는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이 영화는 이 세 사람 간의 엇갈리고 비극적인 욕망의 역학을 찬란한 영상으로 빚어낸다.

주름지고 늘어진 노인의 몸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충격적인 오프닝 신은 고고한 정신력과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육체성과 고립된 일상 속에 유폐돼버린 영혼을 상징적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본격 문학의 외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던, 그래서 제자 이름으로 출판한 통속소설을 통해 대리 표출했던 노시인의 숨겨진 욕망과 죽지 않은 열정은 은교를 만나면서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이는 그의 평생의 걸작, 단편소설 '은교'를 탄생시킨다.

스승이 마치 머슴에게 주는 새경처럼 던져준 소설 한 편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서지우는 자신의 비진실에 괴로워하며 스승의 천재적 재능에 대한 질투와 욕망을 거두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탐욕의 존재다. 우연히 미출간 원고 '은교'를 읽게 된 그는 압도적인 예술적 성취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결국 이를 훔쳐 자기 이름으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은교는? 영화 속에서 그녀는 두 남성에게 이상화된 젊음이자 대상화된 여체이고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다. 얼핏 그녀의 위상이 추상적이고 역할이 기능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생생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자 절대 영토화되지 않는 탈주적 욕망의 주체이다.

그런 점에서 이적요에게 '로리타 콤플렉스'를 적용하는 것은 경박해 보이고, 서지우에게 표절 내지는 대필과 관련된 윤리를 들이대는 것 역시 본질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은교를 정점으로 한 삼각구도의 본질은 정신분석학이 역설한 바 있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그러나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대상 그리고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엄폐하는 환상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베니스에서의 죽음'(루키노 비스콘티, 1971)과 '순응자'(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70)이다.

평생 게이 정체성을 숨긴 채 독신으로 삶을 마친 비스콘티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공산주의자였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리얼리즘 감독이자 완벽한 탐미주의자였다. 그의 후기작으로 데카당스 미학의 절정을 보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병에 걸린 노작곡가가 콜레라가 창궐하는 베니스에 도착해 해군복을 입은 미소년에게 생애 최후의 사랑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썩어가는 세상 그리고 죽어가는 육체와 대조되는 소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비스콘티는 장엄하면서도 통절한 바로크적 스타일로 표현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로 유명한 베르톨루치는 혁명과 섹슈얼리티 간의 긴장 관계 그리고 우리 내부의 파시즘을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해온 감독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을 각색한 '순응자'는 어린 시절 동성애와 살인 등과 연관된 외상으로 인해 강박적으로 파시즘을 받아들인 주인공이 반파시즘 운동가인 과거의 스승을 암살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어떤 자기 확신도 결여한 채 살인을 도모하는 주인공의 불안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상상 속을 오가는 혼란을 베르톨루치는 우아한 미장센과 유영하는 듯한 카메라로 담아낸다.

두 영화가 각각 형상화하는 주제는 '페도필리아(pedophilia)'적인 고착을 통한 감각적 죽음에 대한 저항 그리고 '부친살해'를 통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기 초극이다. 인간이 처절한 비극을 예견하면서도 강박적 집착과 피학증적 쾌락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어쩌면 그저 숙명인 건지도 모르겠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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