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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설적인 SNS는 불가능한가 /조현

획일적인 기준보다 타인 의견 존중하고 책임·윤리 수반돼야 소통의 순기능 기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2-12 20:53:4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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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불한당이다. 당겨 늘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 불한당은 길손을 자기 집에 끌어 들이고는 억지로 침대에 누인 뒤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당겨 늘리고 반대로 길면 머리나 발을 잘라버리는 잔인한 방법으로 많은 생명을 빼앗았다. 이런 유래로 해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하면 어떤 절대적 기준을 마련해 놓고 주위의 현상을 기계적으로 거기에 끼워 맞추어 획일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가슴속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지니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 침대에는 나의 정체성이 녹아 있으며 나의 정의가 둥지를 트는 곳이다.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나의 침대야말로 보편성과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주위의 현상과 의견을 나의 침대 길이로 재단하려한다. 이 세상에는 나의 침대만이 있을 뿐 남의 침대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 SNS, 즉 소셜네트워크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의 선거를 통해 SNS가 사회 여론형성의 핵이 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정치적 사안에 있어 그 비중이 날로 높아 가고 있다. 유명 정치인이나 자칭 또는 타칭(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앞다투어 붙여준) 논객이라는 사람들은 많은 팔로워를 자랑하며 폴리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SNS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놓여 있는 대표적인 가상공간이다. 내 주장만 있다. 타인이 나와 다른 의견을 피력할 때 그를 나의 침대에 눕히고는 난도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SNS를 누비는 폴리테이너의 반짝이는 위트때문일까, SNS 세계 안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도 대부분 빈정거림으로 물들여진 재담거리가 된다.

이러한 부작용은 SNS의 속성상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SNS의 하나인 트위터의 경우 140자 이내의 짧은 글로 어떠한 사실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색다른 표현법이 요구된다. SNS의 글들을 살펴보면 사용되는 단어와 문구들이 칼날, 또는 깨진 유리조각을 연상시킨다. 상대방의 의견은 칼날 같은 자극적인 언어에 의하여 너무 쉽게 해체된다. 어떤 사실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면 진실을 놀랍도록 변형시킬 수 있다. 또 뒤틀어진 반어법과 농담이 지나칠 경우 진실은 사라지고 진실의 신기루만이 가상공간 속에 떠다니게 된다. 그리고 인용형식을 취함으로써 말하는 내용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분리시키기도 한다.

SNS의 또 다른 속성은 익명성이다. 익명성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을 안전권에 둔다는 점이다. 익명성과 아집이 강한 자기주장이 만나면 이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두 마리의 짚신벌레처럼 반대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서로 집어 삼키려 한다.

SNS가 나쁜 것은 아니다. SNS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이것이 모여 사회의 여론이 되며 이러한 여론이 역사적 상수와 역사적 구심점이 되는 순기능적이고 효율적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검증의 수단이 없으며 토론이 부재하며 절제된 의견피력이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인기인들과 자칭 타칭 논객- 그들이 정치인이건, 연예인이건 - 들에 의해 여론이 호도되거나 또는 대안 없는 분풀이의 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사실이다.
SNS가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동떨어진 채 구름 위의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정부가 국민들과 함께 진흙탕을 밟는 것이 최우선이나 우리 국민들도 절제된 의사표현과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칭하는 일부 논객들은 SNS 공간상에서의 책임과 윤리를 개발, 정착시키는 큰일이 기대되는 사람들이다.

18세기에 전기방전실험으로 유명한 리히덴베르크는 당시의 신문 1년분을 읽고 나서 신문에 대해 '50%의 그릇된 희망과 47%의 잘못된 예측, 그리고 3%의 진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신문의 진실성에 대하여 회의를 나타낸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의 SNS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릇된 희망이란 틀린 말이다. 희망은 항상 옳다. 그리고 우리는 SNS가 본래의 순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97% 라고 옳게 희망해본다.

인제대 보건과학정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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