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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투표는 총탄보다 강하다 /송문석

정치판 판갈이는 불과 한끗 차이, 유권자 결단 하나로 마술처럼 바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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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에서 한 노인이 아고라로 향하던 정치인을 붙들고 도자기 조각을 내밀었다. "제가 글을 쓸 줄 모릅니다. 여기에 아리스테이데스라고 써 주세요." 아테네 시민들은 1년에 한 번씩 민회에서 참주가 되려는 위험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오스트라키스모스'라는 도편추방제(오스트라시즘)를 실시해왔다. 이 날이 그 날이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고 집정관이 되어서도 공정하고 청렴하다고 칭송을 받던 인물이었다. 정치인이 물었다. "그 사람을 잘 압니까?" "아니요.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내쫓으려 하지요?" "가는 곳마다 깨끗한 사람이니, 의로운 사람이니 해서 이젠 지겨워졌기 때문이라오." 그는 노인의 요구대로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적어주었다. 투표 결과 아리스테이데스는 추방되었다. 그날 노인에게 이름을 적어준 정치인이 바로 아리스테이데스 본인이었다.

투표는 투표함 뚜껑을 열기 전에는 누구도 결과를 모른다는 데 짜릿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아테네의 '공정 맨' 아리스테이데스도 설마 하면서 자기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준 것 아니겠는가. 물론 정적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슬쩍 적어줘도 됐겠지만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정직하고 공정했다. 투표의 미덕은 또 있다. 투표로 누군가는 뽑히겠지만 누군가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표가 모여 집단지성을 이루고 그 결과가 위정자들과 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흥분되고 신나는 민주주의 제도다. "당신, 아웃이야!"라는 투표함 속의 소리없는 유권자의 외침이 모여 함성으로 변할 때 정치판은 싹쓸이되고 판갈이가 이뤄진다. "투표(ballot:밸럿)는 총탄(bullet:불릿)보다 강하다"는 링컨의 말은 울림이 크다.

'박근혜와 일곱난장이'가 출연한 결말이 뻔할 것 같던 대권 드라마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계기로 극적 반전이 진행 중이다. 젊은이들의 롤 모델 안철수가 일으킨 핵폭풍에 청와대 대문 열쇠를 곧 쥘 것 같았던 박근혜의 대권가도는 급브레이크가 걸렸으며, 여야의 기타 대권주자 일곱난장이는 더욱 왜소해져 일부는 조연급에서도 밀려나고 말았다.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일면서 내년 4월 총선 직후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 실업자가 여의도에서 대거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판 판갈이가 되느냐 마느냐는 한끗 차이로 엇갈린다. "이번에는 바꿔야 돼!"라고 분통을 터뜨리다가도 "그래도 그 사람 또 당선될거야"라고 자포자기 하거나 "대안이 없잖아"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 정치판은 현상유지된다. 그러나 "아니 내가 왜 저들의 정치놀음을 위해 바보 천치처럼 수십년째 계속 들러리를 서 줘야 하나?"라거나 "에이, 이젠 정말 못참겠다"며 유권자로서 자각을 하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 정치판은 마술처럼 확 바뀐다.
최근 만난 부산·경남 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러다 정말 다음 선거에서 큰일 나는 것 아니요?"라며 안절부절 못했다. 말뚝을 박아놓고 한나라당 이름표만 달아놓아도 당선된다던 때에도 이들은 "아이고, 선거 쉽지않네요"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그 때와는 감이 확 다르다. 무엇보다 20·30대 젊은 유권자의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하긴 대학등록금에 청춘을 저당잡히고 졸업 하자마자 백수신세, 잘해야 88만 원 세대로 살아가는데 무슨 희망이고 미래가 있겠는가. IT, BT, CT 등 첨단미래산업 대신 강바닥을 파서 경제를 살린다는 정권에게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시로 무장한 발랄한 21세기 젊은이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동남권신공항 저축은행사태 물가고 전셋값에 좌절한 소시민 지역민들은 또 어떨 것 같은가.

출마자가 낙선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거도 아니다. 어처구니 없지만 지난 20여 년간 부산 경남과 대구 경북, 호남, 충청에선 그랬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선거는 요식행위였다. 선거 때마다 유행가 '미워도 다시 한 번' 1절을 정치인이 애절하게 부르면 유권자들은 2절로 화답했다. 그리고 지역과 지역민들은 특정정당과 정치인의 볼모로 전락했다. 내년 선거에서 투표가 총탄보다 강할 지, 허풍뿐인 물총이 될지는 유권자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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