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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신명호

동양평화 실현목적 순국 전 저술 몰두…日, 독도 핑계로 또 탐욕 되풀이 시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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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1-08-03 20:14:4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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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안중근 의사를 처음 만난 때는 1895년 봄이었다. 장소는 안중근 의사가 살던 황해도 해주의 청계동이었다. 당시 김구 선생은 만 열아홉 살이었고 안중근 의사는 그보다 세 살 아래인 만 열여섯 살이었다. '백범일지'에 의하면, 안 진사의 큰 아들인 안중근 의사는 상투를 틀고 자주색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서 장총을 메고는 날마다 노인당과 신상동으로 사냥 다니는 것을 일로 삼았는데, 영기가 발발하여 여러 군인들 중에서 사격술이 제일이었다고 한다. 몇 달 후 김구 선생은 청계동을 떠났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길을 갔다. 그 후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는 공히 독립운동에 투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같은 인생길을 살아갔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자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의병 운동에 투신했다. 1909년 10월 26일 의병부대의 참모중장으로 활약하던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몰아세우는 일제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것은 전쟁에 패하여 포로가 된 때문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요, 한국 의병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 행한 일이니 만국 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안중근 의사는 순국하기 직전까지 '동양평화론' 저술에 몰두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청년들이 서로 죽고 죽여야만 하는 참극이 왜 일어났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런 참극을 극복하고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였다. 러일전쟁 때 일본은 전쟁의 명분을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 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명분을 믿고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일본을 도왔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을 병탄하려 했고 남만주 지역도 강점하려 했다. 고양이나 뱀 같은 일본의 행동은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신뢰를 깨뜨렸고 평화도 깨뜨렸다. 이렇게 동양 평화를 깨뜨려 몇 억만 인종으로 하여금 장차 멸망을 못 면하게 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과 중국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죄인이기도 했고 동양의 죄인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은 1931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에 한인애국단이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했다. 일제의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서였다. 1932년 1월 8일에 한인애국단 소속의 이봉창 의사는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다. 이어서 4월 29일에는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으로 일제 요인들을 암살했다. 왜 이런 피의 악순환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김구 선생은 1932년 8월 10일에 발표한 '한인애국단 선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천명했다. "왜적은 본 한인애국단을 가리켜 싸움하기를 즐긴다 하나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싸우기를 희망할 뿐이고, 침략성을 가진 이름 없는 싸움을 바라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허다한 희생을 돌아보지 않고 끝끝내 폭렬한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은, 우리 손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고 사선을 쫓기어 난 우리 한국 사람인지라 이 길을 버리고는 또 다른 길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이 성공되지 못하는 날까지는 이런 폭렬한 행동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말, 일본의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깨졌던 동양평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게 회복해 유지되고 있다. 동양 삼국이 지난 세기의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평화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의 일부 극우 정치인들이 독도를 핑계로 지난 세기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되풀이하려 시도하고 있다. 일본이 또다시 동양사회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동양평화를 깨뜨리려는 그 어떤 세력도 일본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 사회 자체의 지성과 양심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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