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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스님, 메리 크리스마스! /박남준

팍팍하고 어수선한 세상살이지만 희망의 불씨는 간직해야겠지요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4 20:04:0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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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을 보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한 끼의 밥을 먹을 때 눈을 감고 가만히 기도드렸습니다. 막막합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꽉 막힌 제 화두가 사대강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그릇의 밥을 비우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방구들에 몸을 눕히며 정말이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이렇게 다시 눈을 뜨는 아침을 맞이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어떤 시인은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한걸음의 걷는 걸음에도 역사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제게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아우성뿐입니다.

마당에 앉아서 아침 해바라기를 합니다. 어디에서인지 바람이 생겨나 불어와서 처마 끝 풍경 소리로 노래합니다. 내 눈먼 두 귀는 다만 풍경이 우는구나 그뿐입니다. 아무래도 제 기도는 지극한 간절함에 가 닿지 못하는가 봅니다.

스님, 아픈 무릎은 견딜만 하신지요. 화계사에 계실 때에는 하는 일 없는 사람이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없다며 보일러도 틀지 않은 냉랭한 방에 겨우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따뜻한 구들방에서 자는 저는 냉방에서 주무셨던 스님에 비하면 날마다 하는 일 없이 죄만 지으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엊그제 늦은 동치미를 담갔습니다. 씨앗을 조금 늦게 뿌려서 무가 채 자라지 못한 것을 그간 밤이면 보온 덮개를 씌웠다 낮으론 열어놓기를 거듭했더니 제법 씨알이 굵어져서 뽑고, 추위로 인해 땅바닥에 납죽 엎드려 있는 붉은 갓을 한 다발 캐서 한 항아리 담가 놓았습니다.

그렇게 즐겨 드시던 승소(僧笑), 동치미 국수 생각나시면 슬쩍 건너오십시오. 작은 텃밭에 고수나물도 자라고 있고요. 가으내 햇볕에 말려놓았던 애호박고지 물에 불려 들기름에 살짝 볶다가 육수를 붓고 자박자박 만든 애호박고지나물도 만들어 놓겠습니다. 또 있습니다. 처마 끝에 곶감들이 마무리 손질을 기다릴 만큼 다 되어가고 있고요. 고들고들 잘 마른 무말랭이도 매콤달콤하게 무쳐서 한 단지 준비해놓았습니다.

어제 동짓날,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 지인들과 모여 팥죽을 끓이고 농사짓는 친구가 묵은 쌀을 내서 만든 절편과 시루떡, 집집마다 가지고 온 반찬을 나누며 저녁나절을 보냈습니다. 저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슬쩍슬쩍 눈시울을 찍어 내리는 이들도 있었고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자리였지만 어수선한 남북관계며 사대강 이야기는 천근만근 짓눌리듯, 쿵쾅거리는 포탄소리와 콰르릉거리는 굴착기의 기계음으로 내내 무거웠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이곳 제가 사는 곳, 동네밴드를 만들어서 농산물 직거래장터도 열고 지리산학교를 만들어서 문화예술분야의 배움터를 펼쳐놓기도 했습니다만 "객지 것들이 또 무슨 일을…" 하며 닫혀있는 지역민들의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뜻있는 친구들이 '책보따리'라는 작은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에도 도서관이 있는데 뭣 때문에 쓸데없이 도서관을 만드느냐며 백안시합니다. 오후 6시면 문을 닫아버리는, 그것도 교장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도서관과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책과 함께 즐겁게 뛰어놀 수 있겠습니까.

서로의 가난한 주머니를 열어 월세 조립식건물을 얻고 함께 청소를 하며 단장을 하여 꾸민 도서관이 그나마 도로를 확장한다는 방침으로 언제 헐리게 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군에서 작은 도서관 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 비용을 협조해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마땅한 건물들은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못 준다며 관련단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불씨는 꼭꼭 간직하고 있어야겠지요.
스님, 곧 매서운 추위가 몰려올 것입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건강하세요. 너무 용맹정진 하시지 말고요. 스님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공양하고 싶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녕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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