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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전쟁상황서 생중계된 청와대 벙커 안 /권순익

군사적 위급 상황에 국방장관 묶어두는 중대한 오류 범해

원칙적 대응만 지시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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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연평도에 북한군의 방사포가 쏟아지고, 화염이 섬을 휘감고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TV 속에 있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참모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중계됐다. 사퇴 전의 김태영 국방장관도 함께였다. 지난 3월 천안함 폭침 때 한 밤 내내 안방에 전달됐던 장면의 재현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지시하는 대통령, 응답하는 국방장관, 딱딱한 표정의 참모들…. 그 때와 변하지 않은 화면에 기시감이 들 정도다. 연평도 곳곳의 연기 기둥, 피란민들의 모습이 사이 사이 비쳐졌다.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기엔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맞는 일인가.

국가 위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앞에 나서 대응하는 자체를 뭐라하기는 힘들다. 이 대통령은 몇단계씩 늘어지는 관료적 보고체계에 생리적 저항감을 느끼는 기업인 출신이다. 그러나 누구도 대통령이 모든 문제에 정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런 걸 요구하지도 않는다. 고도의 군사적 판단이 강조되고 즉각적인 지휘가 필요한 시점에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붙잡고 있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그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딛쳤는데 조타실에 있어야 할 선장을 선주가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당시 국방장관은 합참본부로 갔다가 청와대의 성화를 받고 지하벙커로 왔다고 한다. 그 직전에는 피격소식을 보고받고도 국회 예결위에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느라 국회를 떠나지 못하는 한심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만약 육군대장 합참의장 출신인 국방장관이 그 시간에 국회, 청와대가 아닌 합참본부나 국방부 벙커에 있었다면 국민은 훨씬 안도했을 것이다. 그게 제자리니까.

또 다른 문제는 북한군 수뇌부는 장막 속에 있는데 우리측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시각 북한의 김정일이나 김정은,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정부와 군의 모든 최신 정보기기와 인력을 투입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볼 수 없는 적이 훨씬 무섭고 어둠 속의 칼이 더 공포스럽다. 청와대 지하벙커와 합참 지하통제실의 중계로 우리 군통수권자와 군 최고지휘부의 동선과 언행은 그대로 드러난 꼴이 됐다. 국민을 넘어 적과도 소통한 셈이니 어이가 없다. "은폐 엄폐 개념도 모르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 하다.
대통령은 국방장관-합참의장-현지 지휘관으로 연결되는 지휘체계를 존중하고 "원칙대로의" 대응만 지시했어야 했다. 그건 전화 한 통화 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다. 그랬다면 '단호하나 확전을 막아야한다'는 메시지를 놓고 벌인 꼴 사나운 소동도 없었을 것이다. 그 시각 지하벙커에 대통령과 외교, 국방장관, 국정원장 등이 머리를 맞댄 모습이 중계되다보니 참모들에겐 '대국민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는 정무적 압박감이 들게 마련이다. 급기야는 여전히 진위가 불투명한 '국방장관의 대통령 지시 오독'이라는 기상천외한 사태까지 생겼다.

단순명료한 대응이 필요한 군사문제에 여러 고려가 개입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2002년 2차 연평해전이 보여준다. 바로 그전 해 봄 북한선박들이 동남해를 침범해 유유히 항해했지만 우리 해군은 나포도 강제축출 시도도 아닌 통신검색과 경고방송만 거듭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남북관계의 악화를 우려한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됐다는 말들이 나왔고 "철책선에서 간첩이 나타나면 초병이 '쏠까요 말까요'라고 묻게 됐다"는 자탄도 퍼졌다. 결국 2차 연평해전 때 이런저런 고려에 손발이 묶인 해군 경비정은 속절없이 기습 당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천안함 폭침 때도 한창 상황이 진행 중인 와중에 "북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는 섣부른 말로 혼란을 자초한 건 청와대였다.

비즈니스 양복이 어울리는 대통령이라지만 항공점퍼도 썩 나쁘진 않다. 적어도 군에 대한 동질감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한다. 대통령이 군사작전 실무자 역할까지 할 수도 없고 하려 해서도 안된다. '군 미필'에 대한 국민 시선을 의식한 '벙커 중계'라면 그건 더 나쁘다. 루즈벨트는 군대 가까이도 못갔지만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원칙과 시스템을 믿는 대범한 모습이 벙커 속의 대통령보다는 훨씬 국민을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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