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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그들의 '눈'이 의심스럽다 /강영조

공공디자인 책임지는 고위 정책가들에게 좋은 풍경을 감별할 능력이 있는가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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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5-05 20:17:1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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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이 풍경이나 나무를 아는지 의심스럽다. 농부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생 빅투아르 산조차 보지 않는 것이다." 최근 온 국토를 휩쓸고 있는 공공 디자인 열풍을 바라보면서, 세잔이 그의 친구 조아생 가스케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생 빅투아르 산은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1000m 정도 높이의 연봉이 일직선을 이루며 펼쳐져 있는데 유독 엑스 분지에서 보면 산봉우리가 솟아올라 있었다. 세잔은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마을에 돌아온 뒤, 1885년부터 약 20년간 그 산을 그렸다. 초기에는 넓은 들판 저 너머에 우뚝 서 있는 산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다가 점점 산은 무중력 상태로 평원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추상적으로 묘사되었다. 미술평론가 리처드 베르디는 그런 그의 그림을 두고 '마치 인간과 신 사이에서 정신적 거간꾼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땅의 색깔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분출한다. 세잔은 그 색깔들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여 그것들이 하늘로 상승하면서 인간의 열망과 우주적 조화의 황홀한 결합을 노래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시인 릴케는 세잔이 이 산에서 종교를 그려냈다고 했다. 세잔에게는 생 빅투아르 산은 거대한 지형 그 이상이었다. 그 산에서 신의 현현(顯現) 또는 우주적 합일 등과 같은 일종의 종교적 감응을 받았다. 그런 그와는 달리, 가끔 그와 함께 시내로 나가는 농부는 그 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잔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는 영산이지만 농부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산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농부의 무신경에 적잖이 화가 난 세잔의 모습을 가스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왜 꼭 같은 산을 보고 있는 이 두 사람의 반응은 이렇게도 다를까.

시각심리학자 볼프강 메츠거는 '사람의 눈은 창과 같다. 그 커튼이라고 할 수 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사물과 생물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바깥 세계가 한눈에 보인다'라고 했다. 이때 보이는 세계는 망막에 맺히는 시각 상이다. 그 시각 상이 풍경이 되려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정신과 만나서 마음속에서 이미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풍경은 마음의 눈으로 본다고도 한다.

마음의 눈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뇌가 풍경을 본다. 풍경을 보는 뇌는 개성이나 감수성, 지적 능력, 기호 등 개인의 주관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 공유하는 풍경관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또 뇌 속에는 인간의 원시적 기억, 본능이 새겨져 있다. 뇌가 풍경을 보게 하므로 풍경을 보는 안목이 없으면 아무리 수려한 기암절승도 단지 바윗덩어리에 불과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추한 풍경의 구별도 하지 못한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면 풍경의 눈맛을 아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세잔이 말년에 그린 생 빅투아르 산이 초기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숙한 경지에 다다른 것을 보면 세잔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감수성을 갈고닦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풍경을 골라낼 수 있는 힘, 즉 풍경력(風景力)을 처음부터 갖춘 사람은 없다. 풍경력도 몸을 단련하듯이 절차탁마해야 하는 것이다.

공공 디자인 열풍을 바라보면서 세잔을 떠올린 것은 그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풍경력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주위의 교량, 도로, 하천, 가로 등이 매력이 없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전문가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공공시설의 풍경적 질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발주하고 시행하는 행정의 책임자들이다. 아름다운 도시의 대명사 파리는 알팡이라는 조경가가 계획했지만 그 계획을 결정한 것은 오스만 시장이었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요코하마도 타무라(田村)라고 하는 뛰어난 도시디자이너가 도시설계 행정을 집행했다. 아름다운 도시에는 눈썰미 있는 행정 책임자가 있었다. 다가오는 지방 선거에서는 후보들의 풍경력을 잘 감별해야겠다. 도시 살림을 꾸려나갈 행정 책임자로서 세잔의 농부처럼 풍경력이 전혀 없는 분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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