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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길 위의 책 /박형섭

낯선 佛 도시에서 몸·머리로 부딪혀 얻은 귀한 경험들 삶의 지평 넓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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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3-12 20:18:5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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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 학생들과 '해외 도전과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이 야심찬 기획은 대학이 학생들의 창의적 문제해결과 도전정신, 국제적 경험과 자기계발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그들은 경쟁을 통해 선발되었듯이 방문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있는 경험을 축적하는 일이었다. 프로그램의 모든 수행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학생들은 출발하기에 앞서 파리대학, 정부기관, 시청, 국립미테랑도서관, 퐁피두문화센터 등 방문지에 대한 사전조사와 그들의 허가를 받은 터였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만남과 교류가 시작된 것이었다. 현지의 삶은 앙케트는 물론 식사, 숙박, 이동수단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파리 라틴구는 대학가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소르본 대학 아래쪽 후미진 곳에서 부조리연극의 발생지 위세트 소극장을 발견했고,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이오네스코, 베케트가 묻혀 있는 몽파르나스 공원묘지를 방문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읽고 해석하고 토론했던 작품들, 작가들의 삶이 스쳐갔다. 누군가 이왕이면 파리대학의 수업을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굿 아이디어! 그러나 사전 약속 없이 프랑스인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고 무례한 일에 속한다. 주저하던 한 학생이 강의실로 향하던 교수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니 기어이 그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교수는 강의에 앞서 한국학생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취지를 설명하며 교재까지 건네주었던 것. 프랑스 학생들과 즉석 미팅이 이루어졌고, 미흡하지만 서로의 앎에 대해 소통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공공기관을 방문하면서 그 시스템과 환경, 일하는 모습을 견학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뒷골목의 풍경이었다. 다양한 차림의 여행객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고건축물들, 예술사가 뒤섞인 현장에서 저절로 이국적 정서에 도취되었다. 뤽상부르공원, 타센 예술서점, 플로르 카페, 오르세미술관, 조금 더 걸어가면 센 강가의 고서점들이 있었다. 조이스, 릴케, 사르트르, 카뮈 등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여기에 머물다 갔을까. 어느덧 학생들은 퐁네프다리를 건너 파리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걸어서 다가갈 수 있는 곳에 사진 속의 현장들이 즐비했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여가수'는 녹탕뷜극장에서 초연(1950년 5월 11일)된 이후, 1957년 위세트극장에서 재차 초장기 공연에 돌입,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 그곳에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이 영원히 머물러 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관객인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 도시 속에 진정한 미학이 있다. 문화는 사람이 숨 쉬고 있는 공간에서 쉼 없이 생성되면서 고고학으로 재탄생한다. 아득한 옛 것과 갓 태어난 것이 공존하며 문화는 진화한다. 방문객은 거리에서 문화라는 공기를 호흡하며 심미적 세계로 빠져든다.

학생들이 가는 곳은 어디나 낯설었고 늘 어려운 일에 봉착했다. 밤길에 좀도둑을 만나 배낭 속의 물건을 털리는 일도 겪었다. 고속철을 타고 이동하던 중 e티켓 승차권을 소지하지 않아 검표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결국 벌과금을 물었다가 나중에 되찾은 일, 한국현대사와 춘향전의 이야기를 꿰고 있는 프랑스인을 만났던 일, 서점에서 한국문학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찾던 일 등 무수한 에피소드들, 그 모든 경험이 공부였다.

지식은 책 혹은 도서관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창의력은 도전에서 비롯해 실전에서 발화된다. 힘들고 비용이 들더라도 머리와 몸이 함께 움직여야 진정한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문화인, 문화도시는 책상 위에 있지 않다. 이방의 도시는 어쩌면 낯선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시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감동적인 것, 고유한 것, 경이로운 것은 보는 이의 지평을 넓혀준다. 학생들의 경험은 미래의 우리 도시를 형성하는 자원이 된다. 문학과 예술은 삶이고, 그 정신은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본 프랑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책이었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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