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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이름이 발라야 모든 것이 바르다 /김재기

희롱당하고 왜곡되는 언어…결국에는 우리의 삶을 망가뜨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03 20:56:1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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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일이 되지 않는다(名不正 卽言不順 卽事不成)."

인간에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말 때문에 생기는 오해나 갈등을 생각하면 말을 바로잡는 게 세상을 바로잡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말이 단지 의사소통과 감정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양식을 규정하는 틀이라고 본 셈이다. 한마디로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무심코 먹는 음식이 건강을 좌우하듯,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삶 속에 스며들어와 삶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사례는 많다. 문제는 그 중에 치명적인 독을 품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선 명품이라는 말을 따져보자. 사전에는 명품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쉽게 말해 국보급 고려청자나 미술관에 걸릴 만한 그림 등이 바로 명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명품은 그런 게 아니다. 특정상표를 직접 들먹이기는 뭣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있을 외제 브랜드들을 명품으로 부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란 단지 사물을 중립적으로 지칭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모든 말은 필연적으로 2차적 의미작용, 즉 가치평가와 의미변형을 동반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명품이란 단지 특정상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고급의, 멋진, 훌륭한, 세련된, 심지어 바람직한"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것은 명백한 언어의 왜곡, 현실의 왜곡이다. 왜 특정상표의 옷이나 가방을 '명품'이라 부르는가? 그것들은 단지 고가사치품(luxury goods) 또는 유명상표 제품(brand-name products)일 뿐이다.
다른 예로 요즘 TV를 도배하다시피 하는 소위 '예능프로'라는 말은 또 어떤가? 예능이라? 사전에는 예능이 "예술과 관련된 재주와 기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예능프로에는 연예인, 즉 대중예술인들이 나오므로 예능이라는 표현은 크게 틀리지 않는 것일까? 물론 예능프로의 출연자들은 춤이나 노래, 성대모사와 우스갯소리 등 다양한 재주를 보여주며, 그 중 일부는 예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기량을 뽐내기도 한다. 난 예술이란 말을 편협하게 해석하고 싶지도 않고, 대중예술인들의 역할을 폄하할 마음도 없다. 또 그들이 웃음과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왜 꼭 그런 프로를 예능이라 불러야 할까? 그냥 오락프로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일까? 멋지다보다는 쉬크하다가 더 '간지난다'고 우기는 사람들처럼 예능이란 말이 오락보다 더 품격 있다고 믿는다면, 그거야말로 대중예술의 오락 기능에 대해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홍세화 선생은 우리 사회가 공화국이라는 말을 남용함으로써 이 말이 지닌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경고한 적 있다. 맞는 말이다. 자극적 표현을 좋아하는 일부 언론이 '서울공화국'이니 '삼성공화국', 심지어 '투기공화국'에 '성형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고, 이는 결국 우리나라 헌법 1조를 장식하고 있는 소중한 낱말을 옆집 강아지 이름 같은 것으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언어를 희롱하고 왜곡하면, 결국엔 언어 또한 우리의 삶을 조롱하고 망가뜨리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정치 또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거의 나쁜 뜻으로만 쓰인다는 건 참 시사적이다. 이 말은 늘 '국익이나 정의, 원리원칙'과 같은 보편적 가치와 대립되는 뜻으로 왜곡되어 사용되곤 하는데, 정작 흥미로운 건 정치인들 스스로도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런 어법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은 정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인 것처럼! 정치인들 자신이 정치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나라에서 올바른 정치, 제대로 된 정치, 시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진짜 민주정치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경성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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