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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박성조

인권·이타주의 등 비물질적 차원 중요…G20 유치 자만 말고 '선진 인간' 돼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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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10-18 20:52:3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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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너무나 큰 성공을 성취한 사람은 과대망상증에 빠질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승승장구하여 8강에 오른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심리학 강의'를 했다. 그의 가르침은 간단하다. "과도한 자신감보다 절제와 겸손이 절실하다"고 했다. 한국은 (최)단기간에 성취한 민주화, 경제발전 때문에 자만하다가 1998년 치욕적인 IMF경제위기를 맞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끝난 G20을 내년에 한국에서 주최한다는 소식에 '한국은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다'고 야단이다. 이렇게 중대한 국제모임을 한국이 주최한다는 것은 우리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고, 모든 점에서 안전하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한 결과다. 그래서 MB가 다시 한번 더 "만세"를 불러도 좋다.

문제는 두 가지의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국제적 이벤트 유치 문제다. '하면 된다'는 식으로 몇 번이고 국제행사 유치를 시도하고 실패만 하다가 어쩌다 성공하면 자화자찬하는가 하면, 정말 '준비가 부족한 상태'이면서도 사생결단 주최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빈번하다. 물론 이러한 행사를 통해 습득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너무나 크다. 외국인들을 위한 큰 잔치를 치르느라고 막대한 SOC투자를 하고 이로 인한 환경파괴의 대가는 누가 지불해야 하나. 시한부적인 민주주의는 가시적인 것을 좋아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이벤트에 급급하게 한다.

자치단체는 '이벤트 단체'로 전락하고, 불행하게도 민주주의를 이를 위한 절차적 도구로 생각한다. 크라우츠(Crouch)는 오늘의 민주주의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고 했으며, 베네트 (Bennet)는 '쇼를 중심에 두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쉽게 말해 '독립적, 자생적인 풍요스러운 가게 운영'이다.

또 다른 문제는 G20을 선진국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선진국과 중진국들의 모임이며, 자본주의 경제만이 아니고 사회주의 경제 및 체제변혁경제 국가도 회원국이다. G20은 경제적, 물질적 차원에서 세계GNP의 90%, 무역의 4분의 3을 점유하는 거버넌스이다. 선진국의 정의를 한국에서는 불행하게도 항상 2만 달러를 기준하여 말한다. 이것만을 잣대로 한다면 많은 중동의 산유국들은 이미 선진국이 된 지 오랠 것이다.

선진국의 정의는 이미 OECD, UNDP 등의 '물질적, 유형적인 차원'을 넘어 비물질적, 무형적 차원까지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교육, 기능, 기술, 건강, 복지, 주거, 민주주의제도, 주민 참여 등도 주요하나, 다른 문화와의 화합성, 고령자들의 사회통합, 녹색성장, 인권, 특히 이타주의 등이 세계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후자의 기준을 두고 한국을 볼 때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너무나 멀다는 것을 통감한다.
이타주의를 기준으로 한국을 보자. 한국 정부 차원의 대외원조 (ODA)를 보면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급에 속하며, 더구나 왕년의 사회주의국가였던 체제변혁국들보다도 못하다. 창피하다. 세계경제 13위라고 자랑하는 국가이지만, 국제적으로 이렇게도 인색할 수 있는가. 환경파괴의 요인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10위권에 들어 간다는 역설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고령자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명절에 수백만 명의 인파가 어떻게 하든 차를 몰고 노부모를 찾는 예의는 칭찬할 만하지만, 고령자를 안아야하는 사회복지는 말할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 인권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올바른 철학이 없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은 교육왕국으로 자처하고 있으나, '입시지옥'문제조차도 해결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우리의 현실과 정치인들의 언어간의 괴리는 너무나 크다. 선진국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한국인들은 '집단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유럽 중세의 표현인 '위대한 우리들'(plural maiestatis)속에 '나'를 감추고 있다. 아마도 선진국이 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선진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베를린자유대 종신정교수·동아대 동북아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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