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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허균의 '호민론'을 다시 생각한다 /장희창

민의 틀어막힌 세상 부조리에 맞서며 참된 권리를 외치는 호민은 어디있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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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06-24 20:24:47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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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두려운 것이다.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는 통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였고, 야수의 힘을 제도권으로 수렴하기 위한 유혈의 역사였다. 완장을 찬 권력은 반드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는 물리력에 의해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다." 소위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다. 비폭력 저항을 실천한 간디, 시민의 불복종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들은 부당한 권력 앞에서 시민의 도리를 설파한 선각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허균은 '호민론'에서 오만방자한 권력에 대한 반감을 이렇게 묘사한다. "저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였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윗자리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라리며 구렁이 같은 욕심을 부리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 절대왕권 시대임을 고려하면 대단히 급진적인 발언이다. 그가 왜 홍길동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부정한 재물을 몰수하고,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관아를 습격했으며,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율도국이라는 망명정부를 세웠는지 짐작이 간다. 민중의 저항권에 주목한 허균의 이러한 선구적인 사상은 세계민주주의 형성사에 포함되고도 남음이 있다. 존 로크보다도 루소보다도 앞선 시대의 인물이다. 이런 사상가를 정쟁의 제물로 삼은 우리 조상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허균은 무엇보다도 민본주의자였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하지만 허균이 민중을 맹신한 것은 아니었다. 민중의 본성을 투시하는 허균의 시선은 냉철하다. 부당한 권력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민중을 항민, 원민, 호민의 세 부류로 나눈다.

항민(恒民)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지나 의식이 없는 우둔한 민중이다. 이들은 기존질서에 만족하며, 늘 보아오던 것에 속박되어 순순히 법을 받들며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 그러므로 포악한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탈의 대상이다. 수탈당하면서도 수탈당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권력짐승들이 이리로 몰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몰면 저리로 간다. 이들의 삶은 가축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와는 달리 원민(怨民)은 왜 자신이 수탈을 당하고 갈취당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처지가 못마땅함을 깨닫는 무리다. 그러나 뼛골이 부서지도록 모질게 착취당하면서도 이들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저 불평만 한다. 저항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호민(豪民)은 부당한 대우와 사회 부조리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와 함께 남의 권리를 위해 조직력을 갖추고 실천한다. 허균은 이런 호민 세력이 적다며 한탄한다. 민중을 아낄 줄 모르고 폭정을 일삼는 자들이 우리 시대의 지배계층인데도, 나라가 땅이 좁고 인구가 적고 백성이 게으르고 통이 좁아서 그런지 호민세력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민과 원민으로 가득한 당대 민중의 무기력한 실상 앞에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심경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권력의 횡포가 극심해지면 항민도 원민도 잠에서 깨어난다. 어지러워진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선 호민이 팔을 쳐들고 한번 소리를 외치기라도 하면 원민도 항민도 모여들어 스스로 외쳐댄다.
오늘의 허균,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에 민주주의를 새겨놓고 영면했다. 퇴임을 얼마 앞둔 시점에 그가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는 민권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닙니다. 최정점도 아닙니다. 진짜 권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 권력입니다. 각성하는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시민 권력입니다." 생전에 말 많다고 비난받았지만, 참으로 명언이다.

지금 거리와 광장은 시민의 여론으로 들끓고 있다. 권력이 민의를 틀어막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데도 권력은 오불관언이다.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다. 경쟁과 배제와 차별의 논리가 난무하고, 그 집행자로서 사유화된 권력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런 혼돈 한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시대는 착한 시민들에게 왜 이렇게 무거운 화두를 강요하는가? 나는 생각한다. 희망도 절망도 없다.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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