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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공짜는 없다 /김재기

기술 첨단화 속 인간성 훼손 `가속`

무엇이 행복인지 성찰 필요한 때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6-03 20:44:1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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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자 감사의 달이라는 5월은 전대미문의 비극적 사건으로 많은 사람을 충격과 슬픔 속에 몰아넣은 채 시간 저편으로 사라졌다. 정치적 평가나 법적 시비를 논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지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떠난 이의 마지막 말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무거운 사색의 짐을 지운다.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식상한 이야기요, 얼핏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는 부처님의 연기론(緣起論)을 되뇌게 하는 표현이지만, 난 엉뚱하게도 그 속에서 '우리가 삶을 누리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가장 큰 대가는 바로 죽음'이라는 역설적 깨달음과 마주친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가르침 중 하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원칙이었다. 험난한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교훈이지만 '최소 투입으로 최대 산출'을 낳는 것, 무조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만이 절대선으로 숭상되는 요즘, 이 소박한 진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짓밟히고 조롱받는 '무능한 촌놈들의 좌우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성의 잣대가 승리의 황금빛 왕관을 뽐내는 게 현실이라 하더라도 '공짜는 없다'는 낡은 진리는 여전히 삶의 지혜요,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우주의 원칙이다.

어떤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언제나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초등학교 도덕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짜는 없다'는 법칙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 존재의 모든 영역에 좀 더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기 위해 팔다리를 잃었고, 하늘을 나는 새들은 가벼운 몸을 얻고자 단단한 뼈를 버렸다. 문명의 놀라운 성과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한 것을 진화라 부른다면 우리는 이 진화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잃었을까? 오늘날 우리 주변의 엄청난, 때로는 과잉이라 불러 마땅한 삶의 물질적 혜택들을 만끽하기 위해 대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걸까? 아니,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일말의 성찰이라도 있는 걸까? 그저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기만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기만 한다면, 그 대가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게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에너지 위기나 환경문제 등과 같은 거창한 낱말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굳이 거대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소한 편익을 누리기 위해 매일매일 꽤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음을 통찰해야 한다. 휴대전화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기기의 발달은 편지를 주고받는 설렘과 즐거움을 모두 빼앗아갔으며, 리모컨이라는 괴물은 우리의 심성마저 조급하게 만들었다.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손가락 하나로 수십 개의 채널을 조종하며 갖가지 자극적인 가상현실을 맛보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자기 뜻대로 바꿀 수도 없는 지루하고 느린 현실은 얼마나 짜증나고 답답하겠는가? 자동차와 패스트푸드가 사람들의 건강을 망가뜨리고 고층아파트가 이웃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것 정도는 이제 너무 진부한 얘기이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문명의 해법은 더 비싼 웰빙음식을 찾아다니고 따로 시간과 돈을 들여 헬스클럽을 찾는 것이며, 외로움을 달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기계에 매달리는 것이다. 아프리카 부시맨들은 환경운동이나 생태학 같은 어려운 말을 전혀 모르지만, 사냥할 때 암컷이나 새끼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머는 순간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공짜는 없다'는 깨달음이 그들의 삶에 천부적인 균형감각을 제공한 결과다.

얼마 전 차를 없앤 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내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차를 몰고 다닐 때에는 주변의 차들만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물질적 풍요든 민주주의든, 뭔가를 누리려면 다른 뭔가를 버려야 하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공짜로 누리는 불가능한 행복을 최고의 이상으로 여기면서, 소중한 진리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맛있는 걸 잔뜩 먹으면서도 더러운 똥만은 절대 싸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보들처럼 말이다.

경성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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