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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잘 가라, 나루여! /박창희

기존 나루터 없애고 새 나루터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이고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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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04-15 21:17:4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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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공은 '허허~' 하고 웃기만 했다. 멍하니 강을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또 그냥 웃었다. 강을 떠메고 살아온 한 생애, 거센 물굽이가 넘어갔는데도 무슨 미련이 남았을까. 떠나보낸 배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고 했다. 강을 보는 그의 눈 속에 어느새 강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낙동강의 마지막 뱃사공이라던 최보식(67) 씨 이야기다. 명자꽃이 망울을 터뜨리던 지난달 중순,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臺岩)나루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대암나루 폐쇄 후 약 1년 만인데,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그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일거리를 잃은 아내는 강 건너 수박밭에서 순을 따 일당을 번다고 했다.

대암나루 밑에 달성군 구지면~경북 고령군 우곡면을 잇는 우곡교가 놓인 것이 2008년 2월이다. 최 씨가 40여년간 해온 뱃일을 접은 것이 이 때다. 우곡교 개통식이 그의 뱃사공 졸업날이었다. 우곡교에서 지역인사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며 손뼉을 칠 때, 최 씨는 텅빈 나루에서 평생을 끌고다닌 배를 어루만져야 했다.

그가 몰던 철제 도선(일명 너벅배)은 허가관청인 고령군에 인도되어 우곡교 옆에 전시됐다. 노란색 페인트칠이 되어 멀뚱하니 앉은 풍경이 희화적이다. 그렇게라도 붙잡아둔 것이 위안이긴 하지만, 전시행정 같아 뒷맛이 쓰다. 대암나루에 깃든 사연과 40여년 간 황소처럼 노를 저어온 뱃사공 얘기는 어디갔단 말인가.

지난 주말 찾아간 경남 창원시 동읍 본포리의 낙동강변에는 못 보던 플래카드 하나가 나부꼈다. '본포나루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 끝내 문을 닫았구나….

본포의 옛 나루터 집을 고쳐 '알 수 없는 세상'이란 찻집을 10여년간 운영해 온 장윤정( 56) 씨는 제방공사에 떠밀려 결국 집을 비웠다. 플래카드는 그의 고별사였다. 장 씨는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했다.

4년 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나루터 집 철거 통지를 받은 장 씨는 백방으로 뛰며 나루터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의 문화계 인사들이 동참했고 1000여 명이 서명했다. 하지만 국토관리청의 '제방보강 계획'은 그대로 관철되었다. 나루터 집은 이제 뜯길 일만 남았다.

자료를 뒤져보니 사연이 꽤 쌓였다. '본포나루의 추억 또는 악몽'(2004. 6. 23), '나루여 삭막함이여'(2005. 6. 1.), '주모, 술 한잔 주소'(2005. 11. 23.)까지 본란에 쓴 칼럼만도 3개다. 오늘은 비명(碑銘)을 쓸 차례다. '삶의 원초적 기억이 머문 곳/소통의 복원을 꾀하던 나루/2009년 4월 포크레인에 무너지다.'

진짜 나루라던 본포(本浦). 그곳의 정담과 교류, 시와 노래, 달콤한 감잎차와 알싸한 와인은 이제 추억이 될 것이다. 만사휴의다. 시원하다. 그래 가버려라! 지키지 못한 나루는 강물이고 먼지이며 바람이거늘….

정말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도무지 지킬 줄을 모른다.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만 있고 '버틸 재간'을 찾지 못한다. 개발세력과 싸우는 보존세력은 늘 패잔병이다. 패하고도 복기를 기피한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선 문화를 이야기한다. 문화체육부는 '4대 강, 문화의 물길을 트자'는 슬로건 아래 정책 아이디어를 마련하느라 바쁘다. 지난달 19일 경북 도청에서 열린 '문화가 흐르는 4대 강 살리기' 세미나에서는 낙동강 따라 흐르는 서원과 정자, 별신굿, 오광대, 가야문화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 개발, 나루터를 거점으로 한 소통의 복원 등이 제시됐다. 그런 방향으로 정책이 흘러갈 조짐이다.
그런데 앞뒤가 맞지 않다. 지켜야 할 나루터를 없애고 새 나루터를 만드는 게 무슨 소통이고 문화인가. 4대 강 살리기가 허망해지는 것도 이 대목이다. 국토해양부의 '삽질'과 문화체육부의 '이야기'가 제각각이다. 하나 하나가 노천박물관 같은 기존 나루터를 철거하고 반성도 없이 다시 세우는 나루터는, 단언컨대, 장식이거나 가짜다.

(※지난 주말 이사를 한 장 씨는 본포나루에서 6㎞가량 내려간 밀양시 초동면 곡강리에 새 집을 마련했다. 현판이 걸작이다. '마음+몸'을 위 아래로 붙여 한 자로 디자인했다. 강과 사람이 따로이지 않고 마음과 몸이 하나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기획탐사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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