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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왜 자기를 찾지 않는가 /정찬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잃지 말 것은 자기 자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10-17 21:22:3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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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혜능 선사가 자신의 입적을 예견하고 대중에게 이별을 고하며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나니 올 때는 잎이 없었느니라"라고 한 얘기가 떠오른다. 위대한 선사이기 전에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으로서 생멸(生滅)의 면목을 직설하신 듯하다.

산방 마당에도 감나무 낙엽이 뒹굴고 있다. 해거리하는 해여서 그런지 지나가는 바람에도 힘없이 우수수 떨어지곤 한다. 그런데도 나는 며칠째 쓸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다. 제 갈 길을 찾아 뿌리로 돌아가려는 낙엽을 인위적으로 옮겨 태우고 싶지 않다. 어떤 암자의 노승도 시자가 산길의 낙엽을 쓸자 자연의 무위(無爲)를 깨닫게 하고자 일부러 흩어 버렸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무위란 두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아집을 버리고 순리를 따른다는 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독선과 맹신이 심한 인간일수록 순리를 좇기보다는 역리(逆理)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순리는 감로(甘露)의 물처럼 생명을 살리지만, 역리는 당의정처럼 달콤하나 해로운 무엇이 첨가된 것이다. 강의 물길을 살리는 치수까지는 몰라도 멀쩡한 산을 허물어 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악스럽다. 다시는 한반도대운하 같은 망령된 말이 떠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는 묵정밭 속으로 들어가 감나무들의 감을 수확했다. 서울에서 손님이 온다고 해서 시골 정취를 선물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가을가뭄으로 독이 오른 풀들을 헤치고 들어가 간짓대를 이용해 땄다. 홍시는 대부분 산새나 날라리들이 먹고 있어 그대로 두고 덜 익은 감을 끌어내렸다. 떫은 감도 그늘에 놓아두면 저절로 연시가 되니 상관없었다. 물론 새들의 겨울먹이로 까치밥은 한 그루에 대여섯 개씩은 남겨두었다.

오늘 아침 배추밭에 물을 주다가 지나가는 농부에게 "새들이 나보다 먼저 감을 먹는다"고 투덜거렸더니 "바깥주인이 먹은 것이니 서운해 하지 말라"고 한다. 새들도 주인이라는 농부의 말이 여운으로 남아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배추밭에 물주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내 가슴까지 촉촉해지는 것 같아 흐뭇하다. 올해는 총각무와 김장용 무는 씨로 뿌렸고, 배추는 100 모종을 심었는데, 무나 배추가 잎이 커지고 파래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옹골진 맛이 느껴진다. 처음엔 어린 싹을 갉아먹는 벌레 때문에 100모종이 보름이 지나서는 70여 모종으로 줄어들었다. 그것도 섭섭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바깥주인인 거세미와 방아깨비가 먹었으니 양해할 일인 것이다.

배추 속잎은 날로 오글오글 자라고 있다. 무서리가 내리고 바람까지 차가워진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에 시들어가는 다른 뭇 생명과 달리 배추는 자기 내면을 알차게 채워가고 있다. 국화만이 가을의 지존은 아닌 것 같다. 밭의 무나 배추를 보면 '나도 잘 살아야지' 하는 신심이 절로 난다.

저잣거리나 산중이나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진 요즘이다. 이런 때 우리가 진정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불경의 한 구절이 새삼 다가온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신 뒤, 우루벨라로 가시다가 숲속 나무 아래서 좌선하고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이러저리 다니면서 유녀(遊女)를 찾고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나들이 나왔다가 자신은 아내가 없어 유녀를 구해 데리고 왔는데 귀중품을 가지고 도망쳤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청년의 얘기를 듣고는 "젊은이들이여, 유녀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겠는가"라고 물었고, 비로소 젊은이들은 자기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자기를 찾는 일 말고 이 세상에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선가(禪家) 수행자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자기를 찾는 데 가장 극적이고 빠른 길이 선(禪)이라고 한다. 선방에 갇혀 있던 간화선(看話禪)이 왜 산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저잣거리까지 그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지 이제는 성찰해볼 시점인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천변(千變)하고 만화(萬化)한다 하여도 언제나 중심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나'이기에 참으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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