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짠맛 본 첫 강습, 다음 날은 상체 욱신

- 수영 못해도 탈 수 있다는 말에 자신감
- 인터넷 혹은 현장서 서핑숍 등록하면
- 교육부터 보드 대여까지 돼 접근 쉬워
- 혼자 바다에 나가려면 3달~1년 걸려

# "잘 타는 팁은 없다,익숙해지는 것 뿐"

- 생각보다 찬 바닷물·파도 덮치니 당황
- 보드에 엎드려 양팔 젓는 ‘패들링’부터
- 파도 위 보드에 일어서는 ‘테이크오프’
- 탈 지점인 ‘라인업’까지 가는 것도 험난

‘서핑의 성지’ 부산 송정 앞바다 위에 서퍼들이 일렬로 떠 있다. 보드 앞머리(정식 명칭은 노즈)를 세운 채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 임하는 전사처럼 비장함마저 감돈다. 거친 파도가 밀려오자 재빨리 보드에 올라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서퍼들. 하얀 포말을 뚫고 나오는 이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짜릿함이 전해진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은 사계절 서핑이 가능한 ‘서핑의 성지’로 전국 서퍼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여주연 기자 yoen@kookje.co.kr

송정 해수욕장은 수심이 완만하고 파도와 바람이 적당해 초중급 서퍼가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겨울철엔 북쪽 파도, 여름철엔 남쪽 파도의 영향을 받는 국내 유일한 곳으로 사계절 서핑활동이 가능한 천혜의 지역이다. 가까운 해운대 해수욕장만 하더라도 북쪽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아 겨울엔 파도가 없다. 송정을 기점으로 겨울엔 동해안, 여름엔 남해안에 파도가 형성된다고 보면 된다.

부산에 살면서도 멀찍이 구경만 하던 서핑을 직접 체험해봤다. 수영을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초심자라면 인터넷이나 현장에서 서핑숍을 찾아 강습비를 내고 배우면 된다. ‘파도가 좋다’는 지난달 30일 송정에 있는 서핑숍 ‘데이서프숍’을 찾았다. 서핑숍에선 안전·실습교육과 함께 보드와 웨트수트(전신수영복)를 대여해준다.

■파도 위 고꾸라져도 다시 라인업으로

바다에 들어가기 전 육지에서 보드 위에 서는 방법을 배우고(위쪽 사진) 바다로 나갔다.

수트를 갈아입고 해변에 나가 보드를 챙긴 뒤 강사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교육부터 받았다. 강습은 안전수칙과 보드의 명칭 등을 배우는 사전교육으로 시작한다. 교육에 사용하는 보드는 스펀지로 만든 롱보드. 길이 9피트(270㎝가량)로 크고 길지만 무게는 7~8㎏ 정도로 무겁지 않다. 서퍼와 보드를 이어주는 긴 끈인 ‘리쉬 코드’를 매고 나면 본격적으로 교육에 돌입한다.

서핑의 기본 동작은 세 가지다. 거품 파도가 밀려오면 보드에 엎드려 양팔을 젓는 패들링 동작으로 파도를 잡을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춘다. 파도가 가까워지면 두 손을 갈비뼈 옆에 붙여 상체를 일으킨 뒤, 가볍게 튀어오르는 느낌으로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테이크오프·take-off). 육상에선 이 연속동작을 익히면 끝. 바다로 나간다. 라인업(파도를 타는 지점)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매일 또 매 시각에 따라 크게 다르다. 발이 닿는 곳까지만 나가는데 이날은 해변에서 약 70ｍ 지점에 라인업이 펼쳐졌다.

벌써 여름의 무더위가 덮친 날씨였지만 바다 속은 미지근할 거란 생각과 달리 차가웠다. 데이서프숍 조윤현 대표는 “바다의 계절은 육지보다 한 계절 늦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차가운 바다가 데워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여름이니까 바다는 이제 봄이다. 10월이 가장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허리 위로 물이 차 오르는 바다는 처음이라 돌다리 두들기듯 발이 땅에 닿는지 조심스레 걸었다. 라인업까지 가는데도 파도가 물보라를 앞세워 덮칠 때면 시야는커녕 숨도 못 쉬고 입엔 짠맛만 남았다. ‘육지로 돌아갈까’를 수십, 수백 번 고민하면서 라인업에 도착했다.

파도는 수강생 7명이 돌아가면서 탔다. 조 대표가 적당한 파도를 잡아 보드를 밀어주면 ‘테이크 오프~’ 신호에 맞춰 일어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파도 위 일어서는 것도, 바닷물에 고꾸라지는 것도, 다시 라인업까지 돌아오는 것도 두려운 탓에 몇 번이고 다른 강습생에게 순서를 ‘양보’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 첫 서핑에 도전했다. 조 대표의 눈에 띈 것이다. 조 대표는 보드 위 엎드린 기자에게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줬지만, 이미 머릿속은 물보라만큼이나 하얘진 상태였다.

첫 시도는 역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실패. ‘테이크 오프’ 외침에 몸을 일으켰지만 이내 고꾸라졌다. 바닥에 발이 닿아 안심이 됐다. 떠밀리듯 두세 번 타면서 빠지고 또 일어나길 반복하다 보니 바다에 대한 공포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파도를 알아갈수록 조금씩 바다가 편해졌다.

그러나 역시 보드 위에 올라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두 번 일어서긴 했지만 멀리 나가진 못했다. 짜릿함보단 얼떨떨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첫날은 그렇다’는 다른 강습자의 말이 위로가 됐다.

서핑 초심자에겐 보드를 타는 것 못지않게 라인업까지 돌아가는 길도 험난하다. 물 속이라 저항이 큰 데다 파도가 덮치면 물먹는 건 물론 뒤로 쑤욱 밀려난다. 다음 날 어깨와 팔, 겨드랑이 등 상체가 욱신거릴 정도로 보드를 꼭 안고 다녀야 했다. 체력 소모가 큰 이유다. 그러나 파도를 가르는 짧은 순간 짜릿함을 위해 서퍼들은 여지 없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같은 파도란 없어… 익숙해지는 수밖에

서핑 실습 후 녹초가 된 수강생들. 강사로 나선 데이서프숍 조윤현 대표가 마무리 코칭과 주의사항 등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런 인공적 동력도 없이 널찍한 보드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파도와 맞서는 서핑은 가장 원초적인 만큼 개인의 노력만이 실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파도를 잘 타려면 여러 번 파도를 타보고 나의 몸에 어떤 무게 중심이 맞는지, 최적의 자세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파도를 잘 타는 팁’을 달라는 질문에 조 대표는 “바다에 자주 나가면 된다. 서핑은 익숙해지는 것과의 싸움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출석부를 많이 찍을수록,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서핑이 더 좋아지고 또 실력도 늘어난다고 부연했다.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다.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파도 위에서 무게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고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 대표는 이번에도 익숙함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정답이 없어요. 내가 익숙해지면 그게 다에요. 내가 오늘 탄 파도는 내 인생의 마지막 파도라고 여기면 됩니다. 파도는 날씨와 컨디션 등에 따라 매일 달라요. 고정된 매뉴얼이 있을 수 없죠. 즐기다 보면 익숙해 질거에요. 함께 강습받은 분도 첫날은 긴장하고 몸이 굳어서 잘 안됐는데, 두 번째 강습인 오늘은 정말 즐겁다고 했거든요.”

혼자 바다에 나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최소 3개월에서 1년은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다. 일어서는 데만 13차례 강습이 필요했던 수강생도 있다고 했다. 그런 만큼 서두르지 말고 바다를 자주 나오는 게 핵심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언젠가부터 송정을 서핑의 성지라는데 그 역사가 궁금했다. 조 대표에 따르면 송정에서 서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0년대 초반으로 보면 된다. 제주와 함께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핑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서핑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한 건 2012년께니까, 벌써 10년이 됐다. 서핑관광도 늘었다. 조 대표는 “열흘 휴가를 내고 송정 게스트하우스에 지내면서 매일 서핑 배우러 오는 수강생도 있었다”며 “강습생의 80% 이상이 대전 위쪽 지역에서 왔다. 부산 수강생은 10%도 안됐는데 코로나19 이후 멀리 나가지 못하니까 최근에 늘어난 추세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수강한 커플도 서핑 때문에 전라도에서 부산으로 휴가를 왔다고 했다. 이날은 두 번째 강습 날이었다. 이들은 “내일 하루 더 서핑강습을 듣고 싶었는데 마침 숍이 쉬는 날이라 이틀밖에 못해보고 떠난다. 다행히 오늘은 어제보다 파도가 좋아 제대로 즐기고 간다”며 “부산 바다에서 서핑한 추억은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