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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스크린에 현현한 SF 고전의 귀환 ‘듄’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11-03 19:42:2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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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미래의 껍데기를 쓴 중세의 대하서사극이다. 과학 기술은 현대의 상상을 넘어서리만치 발전했지만, 정치 체제는 황제의 통치 하에 귀족 영주들이 행성을 영지로 삼는 봉건제로 퇴조해버린 기괴한 세계의 모험담. 프랭크 허버트가 창조한 원작 SF 소설의 세계는 1965년 발간 당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영화화 또한 일찌감치 논의되어 왔다. ‘엘 토포’(1971), ‘홀리 마운틴’(1975)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1974년에 장장 16시간 분량의 영화를 구상했다가 무산된 바 있었다. ‘에이리언’(1979)을 마친 리들리 스콧이 잠시 감독직을 맡았지만 가족사의 불행으로 프로젝트를 떠났고 그 빈 자리를 데이비드 린치가 이어받아 ‘사구’(1984)를 내놓았다. 3시간 분량을 137분으로 대거 편집해야했던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경력에서 지워버린다.
영화 ‘듄’ 스틸컷.
드니 빌뇌브의 ‘듄’(2021)은 원작 소설의 1부만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사구’와 같은 출발점을 공유한다. 광물자원 스파이스의 산지인 사막행성 아라키스를 둘러싼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 두 귀족 가문의 갈등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가문의 몰락 후에 살아남아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로서의 능력을 각성하고 사막의 유목민 프레멘을 규합해 황제와 하코넨에 맞서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여정. 도입부의 내레이션을 비롯해 직접적인 대사로 작중의 세계상을 해설함으로써 분량의 제한을 극복해보려는 무리수를 두었던 린치와는 달리, 드니 빌뇌브는 주인공 폴이 프레멘과 조우하는 소설 1부의 절반 즈음에 도달한 시점에서 영화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속편의 몫으로 남겨둔다.

감독의 명민함은 영화의 초점을 단순히 ‘듄’의 서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듄’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실감케’ 할 것인가에 맞춘데 있다. 155분의 적잖은 분량임에도 영화는 소설의 중심 플롯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설명하기 보다는 이야기의 디테일과 설정을 일부 생략하거나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대신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려한 미장센과 촬영의 영상미로 영화 속 공간과 세계를 빚어내면서, 꼼꼼히 감상할 수 있을 만큼 고요하고 느린 정중동의 호흡으로 장면을 펼쳐낸다. 공간 디자인에서 소품에 이르기까지 영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채도를 낮추고 지배적인 색조를 설정해 여타의 컬러를 걷어낸 모노톤의 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피사체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구도에 집중하고 시야를 큰 그림으로 확장해 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영화는 와이드 숏을 통해 사막이나 구조물의 크기와 면적을 강조하고, 공간과 그 안에 처한 피사체, 인물의 사이즈를 대비시킴으로서 체감되는 영상의 스케일을 키우고 낭만주의 회화를 방불케 하는 일종의 숭고미(sublime)를 느끼게 한다. 드니 빌뇌브는 기술적으로는 진보하지만 예술적으로는 퇴보하는 이 시대에, 그럼에도 영화예술의 근본은 시각 언어에 있음을 잊지 않은 창작자이며, ‘듄’은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풍광에서 ‘블레이드 러너’(1982)의 미술을 깔고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의 ‘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2001)이다. 상상의 세계를 웅장한 스케일로 스크린에 현현시킨 우리 시대의 새로운 ‘듄’은 관객을 다른 차원의 현실로 안내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에도 영화예술의 존재 방식은 극장임을 웅변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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