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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의 산실…富의 기운이 꿈틀대는 듯

경남 진주시 승산부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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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한옥마을
- 삼성·금성·효성그룹 창업주부터
- 국내 굴지 기업가 생가 모여 있어
- 마을 옆 지수초 출신 동문이기도
- 교내 '부자 소나무'·상남관 유명
- 기업가 정신 수도로 관광지 조성

2018년 한국경영학회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옛 지수초등학교에서 진주시를 ‘기업가 정신 수도’로 선포했다. 선포 장소가 지수초인 것은 삼성 금성(LG, GS) 효성 창업주 등을 비롯해 한국 대표 기업가 수십 명이 지수초 출신인 것과 연관 있다. 지수초 바로 옆 승산마을은 LG, GS를 이끄는 기업인의 생가가 모인 곳이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군 기업가 다수가 한 마을과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특별하고도 묘한 인연 때문에 일대는 ‘부자마을’로 통한다. 그래서 기업가의 생가나 모교를 찾아 ‘부자 기운’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창업자나 관광객이 많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쓰디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굴지의 기업인 정신을 되새겨 다시 힘을 내야 할 때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로 향했다.
■거물들의 요람 ‘옛 지수초’

1921년 개교한 지수초는 2009년 인근 압사리 송정초등학교와 병합돼 이름을 내주고 폐교됐다. 대신 텅 빈 학교 건물에는 ‘옛 지수초’란 명패를 새로 걸었다. 개교 당시 삼성 이병철, 금성 구인회,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동문수학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동문회 명단을 파헤칠수록 입이 떡 벌어진다. LIG 창업주 구철희, GS 창업주 허준구, LG 구자경 명예회장,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아동문학가인 최계락 시인의 모교도 지수초다. 그리고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도 지수초를 나왔다.

삼성 이병철, 금성(LG, GS) 구인회,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지수초 재학 당시 함께 심은 소나무로 전해진다.
교내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우뚝 선 ‘부자 소나무’는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 전 회장이 재학 당시 학생들과 함께 심은 나무라고 전해진다. 옛 지수초 졸업생은 모두 이 나무 앞에서 졸업사진을 찍었고, 지금은 부자가 되고 싶은 관광객이 반드시 들러 사진을 찍고 가는 유명한 포토존이다. 기업가의 모교인 만큼 지원 규모도 남다르다. 옛 지수초 지킴이인 허영도(역시 지수초 졸업생) 씨는 “2009년 태풍으로 부자 소나무 일부가 부러졌을 때, LG그룹에서 이곳으로 소나무 전문가를 대거 파견해 상처 난 부분을 치료하고 고정장치를 설치했다”고 회상했다.

학교 체육관인 ‘상남관’은 LG 구자경 명예회장이 기증한 건물이다. ‘상남’은 구 명예회장의 호다. 20여 년 전 무려 2억여 원을 들여 식당 설비 등을 갖춘 체육관을 지었다. 유리창조차 당시 흔히 볼 수 없던 ‘강화 유리’다. 아이들이 운동하다가 축구공 등에 깨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최근에 지은 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견고하다. 구 명예회장은 모교에서 2년 넘게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모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당시 지수초 총동창회장으로서 동문과 힘을 모아 지수초에 전·입학하는 학생에게 1인당 월 3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허준 선생이 만년에 머물던 지신정.
민간 자본에 팔지 않고 옛 지수초를 지금껏 지킬 수 있었던 건 총동문회 노력 덕분이다. 옛 지수초 총동문회 이충도 사무총장은 매각 위기의 모교를 지키려고 진주시청과 경남도교육청 등을 수십 차례 오갔다. 그는 “모교이기 전에 수많은 기업가를 배출한 기업인의 요람과 다름없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이곳을 찾아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기업인들의 정신을 본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옛 지수초는 내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업가 정신 수도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지난해 진주시는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기업가 정신 교육센터 건립 운영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학교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보존하되 개·보수를 거쳐 기업인 정신 교육 시설과 전시관 등으로 탈바꿈한다.

허씨 대종중 제각 허연정.
■재벌 옆집에 또 재벌… 놀라운 마을

옛 지수초를 나와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한옥마을이 나타난다.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LG와 GS 계열 창업주의 생가 등이 모여 있다는 승산마을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그룹 총수들이 서로 이웃이었다니, 지수초 동문의 명단만큼이나 놀라운 풍경이다.

능성 구씨 대종중 제각.
기막힌 우연은 실은 필연에서 비롯됐다. 승산마을은 본래 600년 전부터 김해 허씨 집성촌이었다. 300여 년 전 허씨 일가에서 능성 구씨를 사위로 맞으면서 이곳에서 허씨와 구씨 일가가 대대로 사돈을 맺으며 함께 살았다. 한 마을에 만석꾼이 한 명만 있어도 부자마을로 치는데, 구한말 승산마을은 만석꾼만 2명, 오천석꾼과 천석꾼도 여러 명 살았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중 가장 부유했던 지신정 허준 선생은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허준 선생과 그의 아들인 효주 허만정은 최준, 안희제와 함께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세웠다. 허만정의 장남인 허정구는 삼성물산 초대 사장이었으며, 허만정의 손자는 허창수 GS 회장이다.
쿠쿠전자 구자신 생가.(왼쪽), 허선구 고가.
고개 숙인 벼가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황금 들판 너머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의 생가가 먼저 모습을 보인다. 바로 옆집이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생가이다. 이어 LIG 창업주 구자원 본가, GS 창업주 허준구와 그의 아들 허창수 GS 회장 생가 등을 잇달아 만난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이 지수초를 다닐 때 머물렀던 허순구(이병철의 매형) 집도 있다. 골목을 하나 돌면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생가도 나온다. 마을 전체가 궁궐을 걷는 듯 아늑하고 무척 고풍스럽다. 일대를 기업가 고향 관광 테마 마을로 조성 중이라 지금은 집 내부를 볼 수 없다. 대신 생가의 주인 이름이 적힌 알림판 앞에서 부자의 기운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무한한 상상이 펼쳐진다.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LG 창업주 구인회 생가.(왼쪽), LIG 창업주 구자원 본가.
삼성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이 지수초 재학시절 머물던 매형 허순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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