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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한국영화의 일차원적 민족주의 표현, 빈곤함만 남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27 19:06:5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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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유관순 이야기’(2019)를 두고 혹자는 그동안 유관순에 관한 영화가 잘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잘못이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해방 이후 윤봉춘이 감독한 ‘유관순’(1948)을 효시로 삼아 도금봉 주연의 1959년 판과 엄앵란 주연의 1966년 판으로 리메이크된 적이 있으며, ‘맨발의 청춘’(1964)으로 잘 알려진 김기덕 감독이 문지현, 김진규 주연으로 ‘겨레의 꽃 유관순’(1974)을 내놓은 바 있으니 극영화로는 벌써 다섯 번째인 셈이다. 유관순 영화로서 이 근작에 차이가 있다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이후부터의 유관순과 주변 인물에 집중한다는 초점의 차이일 뿐이다.

영화는 두 개의 이미지를 번갈아 교차시킨다. 유관순을 중심으로 한 여성 수감자들의 수평적 연대가 감방을 빙빙 돌거나 서로를 감싸고 응원하는 원형의 이미지로 구축된다면, 반대편에는 형무소를 통제하며 상하 간 명령과 복종의 양태로서만 유지되는 일본 관료제의 남성적 직무 관계가 일렬로 줄을 세우는 수직의 이미지를 이루며 대비를 이룬다. 여성과 남성, 수평과 수직, 민중의 저항과 지배자의 폭압이 교차하는 이분법적 대립의 도식. ‘항거’가 지닌 작품으로서의 심도는 딱 여기까지다.

영화는 유관순이 형무소에서 고초를 당했다는 사실을 전시하듯 보여주지만 정작 유관순이 어떠한 신념과 동기를 가지고 항일에 나서게 되었는지, 일제의 강압적 통치가 어떻게 조선 민중의 대대적 저항을 불러왔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만약 고통과 수난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인물에게 설득력과 깊이감이 생긴다고 여긴다면 그건 착각이다. 식민지배기 지식인의 내적 고뇌와 분열을 첨예하게 파고들었던 ‘동주’(2015)와 비교하면 ‘항거’의 인물 해석은 일차원적인 수준에 그친다. 해석은 빈곤하고, 남는 건 방화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애국을 외치는 민족주의 영화의 상투적 수사뿐이다.

‘항거’는 2019년 한국영화 라인업의 큰 특징을 대변하는 사례이다.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다룬 ‘말모이’(2019)부터 ‘자전차왕 엄복동’(2019), 봉오동 전투를 다루는 ‘전투’(2019)와 다큐멘터리 ‘1919 유관순’ 등 항일 기조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 서사의 영화가 범 장르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시대는 일제 강점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명량’(2014)의 뒤를 이어 ‘한산’과 ‘노량’을, ‘안시성’(2018)에 고무되어 ‘살수’가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민족주의 서사가 내재한 논리는 한결같다. 우선 민족의 바깥에 놓인 타자를 적으로 설정하는 인종주의이며, 다음으로는 국가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된 사회를 바라는 민족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다. 공교롭게도 외부에 대한 적의와 인위적 민족 공동체를 통해 현실의 절망을 돌파하려는 민족주의 서사의 범람은 놀라우리만치 파시즘의 전조(前兆)와 닮아있다.

하나같이 외침에 맞선 단결을 외치는 민족주의 영화의 유행은 역으로 이것이 한국 사회가 처한 공동체의 내적 분열과 갈등의 반증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회의감을 품게 한다. 어쩌면 지금 한국 영화의 과잉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고질적인 계급과 성차별, 사회적 불평등의 갈가리 찢긴 현실을 민족이란 수사 아래 편리하게 봉합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과거에는 국책영화로 나왔다면 이젠 시장에서 만든다는 차이일 뿐이다. 이는 명백한 한국영화의 퇴보이며 우려스러운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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