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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탐구생활 <10> 186번 시내버스서 본 풍경

피란수도의 추억, 깡깡이 마을의 울림…버스 타고 돌아본 역사의 흔적

  • 국제신문
  • 이진규 전문기자 ocean@kookje.co.kr
  •  |  입력 : 2019-01-30 19:19:4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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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역서 ‘다른 부산’ 찾아 출발
- 굽이굽이 오른 산복도로 피란촌
- 전쟁 상흔과 서민 애환 오롯이
- 주택 지붕이 주차장인 진풍경도

- 영도대교 건너자 조선소들 즐비
- 항구도시 매력 고스란히 느껴져
- 동삼동 해안풍경 보자 감탄 절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서양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 부르는 리스본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도심을 오가는 강렬한 레트로풍의 트램이다. 여러 노선 중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가장 핵심적인 노선이 28번 트램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지난해 펴낸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의 한 단락인 ‘밀물처럼 밀려오던 리스본의 노스탤지어’에 이 트램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을 리스본으로 이끈 건 이 노란색 28번 트램이었다는 그는 리스본 방문 내내 이 트램만 주야장천 타고 다녔다. ‘이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트램 타는 정취를 맛보기 위해서’라는 그는 트램을 타고 지나가며 본 거리의 풍경과 리스본 사람들의 삶을 간직했다. 그런 그가 이 단락 끝부분에서 한 이야기는 부산의 한 시내버스다. 뻔한 부산,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닌 ‘다른 부산’을 보고 싶었던 그에게 지인이 권해준 게 바로 186번 시내버스였다.
   
부산 중구 영주동 역사의 디오라마에서 바라본 186번 시내버스와 부산항 풍경. 서민의 애환이 서린 동구와 중구 산복도로는 부산 구도심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차창 너머 바라보는 부산의 역사

항구도시 부산은 한편으로 도심 어디에서도 산을 볼 수 있고 전국 어느 대도시보다 산지의 비율이 높은 산의 도시이다. 그래서 거의 부산에서만 쓰이는 산복도로(山腹道路)란 말도 있다. 한때 포털사이트에 산복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급경사 오르막을 운행하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시내버스는 주민에게는 생활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부산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는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게 186번이다. 186번 버스는 영도구 태종대에서 출발해 영도대교 국제시장 산복도로 가야시장을 거쳐 사상터미널(사상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노선을 운행한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른 부산’을 보려고 도시철도 2호선 가야역 앞에서 범천동 방향으로 가는 이 버스를 탔다.
   
태종대에서 출발해 사상까지 운행하는 186번 시내버스 노선 가운데 가야역~차고지 일부 역명.
‘가야시장 맞은편으로 가서 186번 버스를 타보라’고 한 지인의 말대로 ‘다음 날 나는 186번 버스, 그것도 운전수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날을 그는 ‘그리고 그건 내가 알지 못하던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한다. 다음 번에는 피란지 부산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까지 준비해서 다시 타봐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그가 본 다른 부산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는 더 적지 않았지만 186번 버스를 타며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부산 구도심의 풍경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마치 리스본 거리의 28번 트램처럼 186번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중첩된 거리와 사람들을 봤을 터이다. 그의 경험을 공유하려면 역시 운전사 뒤의 좌석에 앉아야 한다. 그래야 산복도로 풍광과 영도의 해안 풍경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동일파크맨션 정류장에서 내려 168계단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도심.
가야시장 정류장을 출발해 범천동의 범천교회를 지나며 버스는 오르막을 가기 시작한다. 도시철도 범일역에서 ‘친구의 길’을 지나오면 만나는 이 일대는 범일골목시장에서 신발박물관이 있는 ‘누나의 길’로 이어진다. 예전 진양고무 삼화고무 등 신발공장에 다니던 여공이 많이 살던 안창마을과 범일동 일대를 기억하고자 만들었다. 이 근처에서부터 민주공원 아래 삼거리까지 망양로가 이어지는데 버스는 정확하게 이 길을 따라간다. 망양로를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산과 주택, 부산항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산복도로 주택가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거처할 곳을 찾아 위로, 위로 올라가며 작은 마을이 만들어지고 차츰 규모가 커지며 동구 초량동에서 중구 영주동, 서구 동대신동으로 확장했다. 산복도로를 구불구불 다니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부산의 역사를 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도로 바로 옆 주택의 지붕이 주차장이 되는 진풍경은 이곳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어디서든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는 산복도로에서는 중첩된 주택 지붕 너머로 신축하는 고층 건물과 공사가 한창인 매립지가 부산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버스가 건너는 영도대교에서 바라본 부산대교와 봉래동 예부선 계류장.
■영도 조선소와 환상적인 해안 풍경

186번이 산복도로만 다닌다면 여느 버스와 다를 게 없다. 해발 150m 안팎의 고지대를 달리던 버스는 민주공원 아래 역사의 디오라마를 지나며 은하아파트, 동아아파트, 금호아파트 등 크지 않은 아파트 앞을 거쳐 국제시장으로 간다. 부산근대역사관과 용두산공원을 바라보고 백산기념관 근처를 지난 버스는 마침내 영도대교를 건너 영도로 들어선다. 왼쪽으로는 거대한 쇼핑센터가 시선을 압도하지만 오른쪽으로는 깡깡이 마을 길이 지나는 동네의 고만고만한 건물과 조선소들이 편안하게 시선을 다독인다. 영도대교를 건넌 버스는 드넓은 부지를 높은 담장으로 가린 한진중공업 옆을 지난다. 항구 도시 부산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조선소 앞길은 부산항대교로 가는 고가도로 아래로 이어진다.

   
한국해양대·부산해사고 정류장에서 내려 바라본 동삼동패총전시관과 조도.
청학119안전센터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튼 버스는 영도구청을 거쳐 해양 관련 기관들이 들어선 동삼동 혁신지구에 닿는다. 국립해양박물관을 비롯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산해양수산개발원 부산해양경찰서 등을 골고루 거친 버스는 한국해양대 입구의 동삼동패총전시관을 거쳐 태종대 입구에서 2시간이 넘는 왕복 여정을 마무리한다. 186번 버스는 앞서 말한 누나의 길이나 국제시장, 영도대교 등 여러 명소를 거치는데 제대로 이 노선의 장점을 누리려면 가야시장에서 태종대까지 내리지 않고 내처 달리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를 권한다.

글·사진=이진규 전문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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