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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 전설’ 스토리의 힘…관광객 모으고 인기 게임 배경이 되다

이야기 공작소- 중국 항주의 인공호수 서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09 19:08:4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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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실경뮤지컬 ‘최억시항주’
- 천년 묵은 뱀과 인간의 사랑
- 중국인에 널리 알려진 비극 담아
- 인근 쌍투교는 웨딩촬영 명소

- 항주 태수로 선정 펼친 소동파
- 그가 만든 요리 ‘동파육’도 인기

- 부산불꽃축제도 콘텐츠 고민
- 사랑스러운 이야기 입혔으면

중국 항주의 서쪽에 있는 서호(西湖)를 찾았다. 서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버드나무였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눈앞에 펼쳐진 버드나무의 도열은 머리를 풀어헤친 수많은 여인이 줄지어 서 있는 듯했다. ‘인상서호’ 공연의 테마스토리 주인공인 백 낭자가 연상된 탓일까. 아니면 기원전 5세기 춘추시대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설욕하고자 항주 출신인 서시에게 그를 미혹시켜 국사를 그르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연상된 탓일까. 확실히 서호는 여성적이다. 서시의 아름다움에 비견해 서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을 간직한 인공호수 서호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항주는 지금 서호에 서린 이야기를 무기로 전 세계를 향하여 약진하고 있다.
   
중국 항주의 서호에서 펼쳐지는 공연 ‘인상서호-최억시항주’의 한 장면. 중국의 전래설화 ‘백사전’을 주 테마로 한 공연으로, 절제된 군무를 연출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호수 표면에 비치고 있다.
■ 이야기의 힘1 : 공연

서호를 밝히던 조명이 꺼지자 객석에 맴돌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었다. 동시에 찾아 든 암흑의 공간, 죽음처럼 깊고 깊은 어둠이 서호에 찾아들었다. 잠시 후 만월의 커다란 인공 달이 솟아오르고 노란 달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호수의 잔물결이 드러났다. 실경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최억시항주(가장 그리운 건 항주)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서호의 쌍투교에서 예비 부부가 뇌봉탑을 배경으로 결혼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멀리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촤라락 촤라락, 발길에 차이는 물소리를 일으키며 무용수들은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처럼 호수의 물 위를 걸어 나온다. 절제된 칼군무를 연출하는 수백 명 무용수의 모습은 거울처럼 호수 표면에 그림자가 투영되어 위아래로 날개를 편다. 관객석 바로 앞으로는 이동형 원형 무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무대 위에 선 아름다운 여인은 전자비파를 켜며 공연의 서막을 연다. 환상적인 무대다.

‘최억시항주’는 중국의 전래설화 ‘백사전(白蛇傳)’을 주 테마로 한다. ‘백사전’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천 년 묵은 흰 뱀과 인간 세상 남자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많은 영화, 드라마로 각색되어 사랑받았으며 지금은 첨단 시스템과 결합한 서호의 공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되고 싶어 천 년을 수도한 백사가 있었다. 백사는 수행 끝에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고, 인간 세상의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훼방꾼이 있기 마련. 아름다운 여인이 백사라는 요물임을 눈치챈 법력 높은 한 승려가 인간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백사를 응징한다. 승려는 천 년 묵은 백사를 잡아 땅속에 가두고 다시는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그 위에 탑을 세워 봉인하였다. 뇌봉탑(雷峰塔)에 서려 있는 백사전 이야기이다.

뇌봉탑은 원래 975년 오월국(吳越國) 마지막 왕인 전숙(전홍숙)이 총애하는 비 황씨에게서 득남한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뇌봉산에 세운 8각형 5층 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비탑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무너지고 훼손된 것을 최근에 다시 중건하였다. 사람들은 황비의 이야기보다는 백사의 이야기에 더 끌리며 탑의 망루에 오르고 서호를 조망한다.

뇌봉탑은 또 웨딩 촬영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웨딩 촬영은 주로 뇌봉탑이 서 있는 맞은편 쌍투교라 불리는 기다란 돌다리에서 행해진다. 쌍투교에는 맑은 날이면 결혼 예복을 입은 신랑과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로 가득하다. 그들은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거나 좀 더 가까이 서서 입을 맞추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들의 뒤편에는 뇌봉탑이 그림처럼 서 있다. 뇌봉탑과 웨딩의 한 쌍, 그 모든 것이 카메라의 한 프레임 속에 담긴다.

쌍투교는 이름 자체가 의미하듯 그 옛날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동반 투신해 숨진 장소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뇌봉탑이나 쌍투교의 이야기는 모두 비극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서린 이곳이 이제 막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에게 인기 높은 웨딩촬영지가 되었을까.

전설의 비극적 결말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선 희망과 사랑으로 변주되었다. 어떤 어려움도, 장애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쌍투교에서 벌어졌던 그 절절한 사랑, 천 년 묵은 백사와 인간 남자의 종을 초월한 사랑, 천 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한성 등의 극적 요소가 오히려 현대인에게 감성적 요소로 다가온 것이다. 서호의 이야기는 비극적이지만 이제 현실에는 비극이 없다. 전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재생산, 재창조되어 소비되고 있다. 이야기의 힘이다.

■ 이야기의 힘2 : 음식

   
서동파가 개발한 요리 동파육과 꽃빵.
서호를 이야기할 때 이 사람과 이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소식)와 그가 개발한 음식 ‘동파육’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에 이르러 소동파는 서호를 찾는 많은 이에게 시인보다는 서호의 소제(소동파가 축조한 방파제)와 ‘동파육’으로 더 유명하다. 소동파는 요리의 달인이자 대단한 미식가였다.

‘돼지고기를 먹자 / 황주의 맛있는 돼지고기, 값은 분뇻값이라네 / 부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난한 이는 요리할 줄 모르네 / 물을 조금 넣고, 약한 불로 잘 삶으면, 그 맛이 비길 데 없네 / 아침마다 한 그릇 배불리 먹으니 누가 이 맛을 알리오’(동파시화, 東坡詩話).

동파육은 통삼겹살에 진간장과 향신료를 넣고 조리한 음식으로, 중국에서 가정식으로 흔히 먹는다. 돼지고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면서 달콤한 맛이 강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요리다. 소동파의 동파육은 원래 항주가 아닌 황주에서 처음 그 요리를 선보였다고 한다. 소동파는 한때 황주에 유배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곳 돼지고깃값이 무척 싸서 돼지고기를 즐기다가 맛있는 동파육을 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황주에서 시작한 동파육이 항주의 명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소동파가 유배지에서 풀려난 직후 항주 태수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항주에 와서 보니 비만 오면 서호의 물이 범람해 홍수가 났다. 이에 소동파는 서호를 대대적으로 준설해 보를 쌓았는데 이것이 현재 서호의 3개의 보 중 두 번째로 축조된 길이 2.8㎞의 소제다. 항주 사람들은 이제 큰비가 와도 홍수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들의 집과 농사를 지켜 준 태수의 선정에 감격해 돼지고기를 보내왔고, 서동파는 이를 동파육 요리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대접하였다.

서화에 능한 데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선정을 베푼 목민관, 더욱이 요리의 달인으로서 직접 개발한 레시피의 동파육으로 백성들을 대접하기까지 했으니 어찌 후대에 길이 남을 음식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서호 하면 동파육을 떠올리게 되고, 서호를 찾는 세계인은 누구나 동파육을 찾는다. 역시 이야기의 힘이다.

■ 이야기의 힘3 : 게임

   
‘인상서호-최억시항주’ 공연 모습.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현대에 이르러 게임산업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게임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게임 문외한조차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게임 속 캐릭터들을 만나보고 있으니 현대사회는 점점 게임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산업은 게이머나 비게이머 모두를 막론하고 모든 장르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와 있다.

PC 온라인 게임의 한 추세를 보면 하드웨어 디바이스의 발달로 극사실주의 배경화면 구현과 탄탄한 스토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유명 게임업체인 N사에서 한국화풍 판타지를 제공하는 어떤 게임을 개발하였다. 이 게임은 아름다운 풍경의 극사실주의 배경화면과 무협 소설 스토리를 가져와 게이머 유저들을 매료시켰다.
바다처럼 넓고 아름다운 항주 서호는 그 게임의 배경화면으로 구현된 실제 배경 중 하나다. 서호는 게임 내 메인 스토리와 서브 스토리의 배경이 된다. 게이머들은 서호에서 ‘낚시’ 콘텐츠를 즐긴다. 또한 서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신의 게임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주요 스크린샷 촬영 포인트로 활용하기도 한다.

서호는 이제 현실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게이머를 열광시키는 게임 속 배경화면으로서도 존재한다. 외연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힐링을 느낀다고까지 한다. 말하자면 현실의 벽을 넘어선 사이버 힐링이다.

■ 서호에서 부산을 보다

부산의 이야기를 해보자. 부산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항주 서호에 버금가는 경관은 없나.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부산을 담은 콘텐츠에는 무엇이 있나.

부산에는 매년 많은 행사가 열린다. 그중 가장 사람을 많이 끌어들이는 행사는 매년 10월 개최되는 부산불꽃축제가 아닌가 한다. 부산불꽃축제에 부산의 이야기를 입혀보면 어떨까. 팡팡 터지는 불꽃 쇼에 어떻게 이야기를 입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전 세계의 수천만 명이 찾아 막대한 공연 수익을 올리는 서호 공연에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다. 대사가 없는 음악과 춤만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수천만 명의 눈과 귀를 홀리며 가슴까지 시리게 한다. 이야기를 지닌 콘텐츠와 이야기가 없는 콘텐츠는 천양지차다. 단순히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 감동을 가슴과 뇌에 선사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화려한 아름다움에 위안을 얻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또 지청구를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니, 이야기를 아는 이들에겐 감동이 배가 될 것이고,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대로 화려한 불꽃과 음악의 향연에 마음껏 빠져들면 될 것이다.

   
이야기는 지역과 결합할 때 더 큰 힘을 지닌다. 어떤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볼 때, 그곳에 사랑이 있다면 그 장면은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름답고 멋진 콘텐츠에 탄탄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면 그 이야기는 갑남을녀의 인생에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부산의 콘텐츠에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입혀 보자.

김민수 작가·㈜플랫폼 대표

※ 공동기획:국제신문, 부산광역시,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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